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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물의 나라 1 ㅣ 박범신 문학전집 13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에이 씨발
ㅡ2012년 12월 19일
조용명
다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
다수가 되고 싶어
숨겨왔던
말들.
참아왔던 행동들.
왜 숨겼을까.
왜 참았을까.
그걸 부끄러워하자.
인간은 멸종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가난해져야 한다.
노인들은 빨리 죽어야 한다.
너희는 독재다.
너희는 부정부패다.
너희는 야합이고
병신들이다.
우리가 옳다.
눈 동그랗게 뜨고
주먹 쥐고
손가락질하며
큰 소리로 말하자.
에이
씨발
죽일 테면 죽여라.
니들 맘대로 해 봐라.

조용명 씨의 시집이다.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몸이 썩어들어가서 그런지 안 그래도 별로
없는 머리칼이 점점 가느다래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최근 나이에 관한 책 자주 본다. 저자가 그래도 양양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같이 살고 그 분들에
관한 시도 쓰고 하는 거 보면 부럽다. 나이 들어서 삶의 낙이라 할 만 한게 인테리어랑 친구와 같이 사는 것이라던데 시인은 이 둘을 다 이룬 것
같다. 농사 지으면서 녹색 속에서 소박하고 깔끔하게 사는 게 최고의 인테리어 아니겠는가.
직설적인 문체가 좋다. 그러나 왜 나이가 들수록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는 시에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우파가 정권을 잡았던 당시의
통분은 드러내지만, 정말로 사적인 일은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안 좋은 일은 더욱. 친구들의 이름을 죽 나열하지만 그들이 살았던 삶에 대해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뿐, 쓰여져 있는 건 그들의 현재 삶이다. 그리고 먼저 죽은 그의 동료들이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왜 죽었는지는
더욱 안개에 드리워져 있다. 하얀 거짓말은 어쩌면 그런지 아닌지를 명백히 말해주지 않아서 말을 듣거나 글을 읽는 상대방을 추론에 빠지게 만드는
기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거짓말은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성진 님의 숨이라는 책도 잘 썼다 생각하지만 내 취향은 확실히
이런 책이다. 뭔가 단순하고 갑갑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진리를 꿈에 가득찬 눈으로 막힘없이 설명하는 그의 말투엔 아직 희망이
배어 있다. 나이를 초월한 건강함이라 할까. 사실 이 시들은 아직 출간이 안 되었고 잡지에 연재한 시들을 책 비슷한 형태로 엮으셨다고 한다.
이왕이면 출판사에서 소속을 밟아서 정식으로 출간하셨음 하는데...
물의 나라 (인상적인 시들+음악.): http://vasura135.blog.me/220967089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