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골 시편 시작시인선 84
김신용 지음 / 천년의시작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개복숭아 집

오랜 류머티즘으로
밭일도 나가지 못하는 그림자만 어른대는 집
그래도 아궁이에 햇볕 들면 잎그릇 소리 달캉이는 집
어릴적, 개복숭아를 복숭아인 줄 알고 따먹고
사흘을 앓아 누워, 속엣것 다 비워낸 눈에는
개복숭아 같은 헛것만 보여
아무리 '개'라는 것이, 사람살이가 만들어낸 헛것이라 해도
풀의 집에는 잡풀이 없듯이, 허기가 만들어낸 환이라고 해도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은 모두 헛것으로 보이던 집
뒷산에 온통 개복숭아 나무뿐인 이 도장골에서 태어나
그 개복숭아를 먹고 병나지 않는 일이
일생의 경작이었던 집

그러나 지금은 쟁기처럼 굽은 그림자 지팡이 삼아
넝쿨풀 기어나오는 흙벽에 기대 앉았지만

어두워지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개복숭아 익듯 불빛 배어나오지만
누구도, 그 불빛 보며
자신도 복숭아라고 강변하듯, 발그레이 물드는 과육이라고 말하지 못하리

잎그릇 달캉이는 소리, 가지가 힘없이 떨어뜨리는 열매라고 말하지 못하리

 

  

안다. 지금 자연에 대한 예찬시를 쓰면서 불교의 단어를 쓰고 동물처럼 식물처럼 인간도 살아야 한다, 라는 식의 시를 쓴다는 게 얼마나 진부한지. (게다가 당시의 정치와 관련되면 관련될 수록 더더욱.)

 

 그러나 이 시집은 계속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한 길만 판 시인의 성찰이 들어있다. 아니, 이 말을 듣고 또 꼰대같다고 리뷰를 읽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완전무결하게 윤리를 지키는 진부한 인간은 아니라고. 이 시집은 농촌의 현실 또한 담고 있다. 지방의 즐비한 폐가, 사람이 먹을 만한 게 나지 않는 과수원, 무수한 데다 생명력까지 질기지만 정원에 심으면 기르는 식물이 되어버리는 '잡풀'들, 도와줄 장성한 아들이나 남편이 없이 혼자서 척척 밭을 일구시는 나이든 아낙들. 직접 농사를 하고 있는 탓일까? 그는 농촌에 대한 환상은 진작에 떨쳐버린 모습이다. 어떤 이념을 품고 도시를 버린 채 내려  온 시골. 벌레 먹은 채소를 먹을 각오도 하지 않고 무작정 머릿 속에서 환상향이라고 그려온 그 곳은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시인은 도장골에서도 상처받은 사람들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자연들을 본다. 그 끝에서 그 시인이 본 것은 이랬다. 신발같은 잎들과 맹인안내견 같은 낡은 기계들과 백열등처럼 환하게 빛나는 개복숭아. 그에게는 그것들이 어떤 화두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불교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천주교에서도 집을 찾아오는 나그네 셋 중 하나에 천사가 끼어 있으며 누구나 마음 속에 신을 모시고 산다고 말한다. 시인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고 싶다고 말한다. 누울 자리를 잘 찾았다고 해야 할지. 세상에서 소외받고 사는 사람들의 침울함을 이 시집은 가만가만 비추며 희미한 불빛으로 쓰다듬고 있다.

 

  

매우 특이한 점은, 도시 사람들을 '까지' 않는다는 거다. 

 

 이런 시, 아니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를 빈민이나 걍팍한 사람들로 묘사하는데 이 시인은 잔잔히 자연을 찬양한다. 농부가 시위를 나가는 시도 그냥 농부가 시위를 나가는 시로 끝난다. 단지 문명이 집 안과 자연을 차단시키는 유리창으로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쉽게 분노하고 그걸 풀지 못하는 나에게는 좀 배워야 할 요소인 것 같다.

  

이런 시, 아니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를 빈민이나 걍팍한 사람들로 묘사하는데 이 시인은 잔잔히 자연을 찬양한다. 농부가 시위를 나가는 시도 그냥 농부가 시위를 나가는 시로 끝난다. 단지 문명이 집 안과 자연을 차단시키는 유리창으로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쉽게 분노하고 그걸 풀지 못하는 나에게는 좀 배워야 할 요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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