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비틀거리는 날이면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시인들이 보내는 5월의 시!
안도현.도종환.이창동.유시민.명계남 외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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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하다

백승훈

앵두나무 우물가에
그녀가 산다

경기도 포천시 동교동 255-2번지
정든 집 떠나 전입신고도 없이
몸부터 먼저 가 누운
샘물치매요양원

얘야, 밥 먹어야지, 밥 먹구 가

면회 마치고
요양원 입구 길 모퉁이 카페
'앵두나무 우물가에'를 돌아 나올 때
등 뒤로 들려오던 어머니 음성
차는 돌부리에 채여
덜컥, 하고
나는 노모의 목소리에 걸려
울컥, 하고

 

 

 

일단, 나는 노무현에 관심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망하신 분이라 더 관심이 없다. 자살이던 타살이던 사망하지만 않으셨다면 봉하마을을 방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관심은 노무현을 맹신했던 사람들에게 있을 뿐이지 노무현에게 있진 않다.

 

 변명같긴 하지만 나는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수능과 드래곤라자같은 판타지소설과 BL물에 열중해 있느라 정치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즉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나는 지랄맞은 담임을 만났고, 그 년이 날 학대할 때 대통령은 나에게 어떤 직접적인 악영향도 도움도 주지 않았다. 노무현도 그러했다. 대통령에게 속았다는 사람들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하느님은 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가' 따위를 지껄이는 개신교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야만스런 대통령이 하는 짓을 보면서 나는 다시 중국 성인의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정치인이 정치를 잘한다는 첫째 증거는 백성들이 정치에 대해 호감도 없고 반감도 없고 그냥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금은 민주주의라서 그런 이상이 더이상 실현되지 못하리라. 그리고 그 정치가는 굉장히 고독하리라. 노무현은 이 두가지를 잊어버리고 자신 혼자 이 모두를 떠맡느라 죽음을 당했다. 이는 중국 성인의 또 다른 말을 생각나게 한다. '전쟁에선 최대한 손실이 적어야 한다.' 사실 이 문장도 일대 혁명이다. 적군과 아군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을 제거해 나가는 게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단어 하나로 작전이라는 단어가 탄생했고 전쟁은 진화를 거듭했다. 그는 정치에 너무 빠져들어 자신이 수행하는 일이 전쟁이라는 사실을 까먹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혁명가는 수명이 짧다. 그래도 노무현 정도면 오래 산 거지.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시인뿐만 아니라 시인이 아닌 사람들도 시를 썼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부담스럽고 닭살이 돋았지만 제법 사람 냄새도 나고 좋다. 무엇보다 이 시집에 쓰인 메타포들은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 전남진의 마지막 헌시에서 나온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요. 그건 당신을 부르는 초혼이라는 걸 알았어요.'라던가는 세월호 추모때에도 실제로 쓰였다. 죽은 사람은 잊혀질지라도 좋은 추모글들은 오래 간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참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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