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젊은 시
이승하 외 지음 / 문학나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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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

송승언

언젠가 우리는 극장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너는 나를 모르고 나는 너를 모르는 채. 각자의 손에 팝콘과 콜라를 들고. 이제 어두운 실내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채. 의자를 찾아서 두리번거리지. 각자의 연인에게 보호받으며. 동공을 크게 열고, 숨을 잠깐 멈추고.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볼 것이다. 우리가 함께 본 적이 있는. 어둠 속에서 사건들은 빛나고. 어둠의 그늘을 밝히고. 우리가 잊힌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팝콘 한 웅큼 쥐려다 서로의 팝콘 통을 잘못 뒤적거리고. 손이 엇갈릴 수도 있겠지. 영화가 뭘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는 채. 깊이 없는 어둠으로부터. 너와 나는 혼자 나올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눈 깜빡이며. 그때 너와 나는 텅 빈 극장의 내부를 보게 된다. 한 속에 빈 콜라병을 들고서.

  

 

영화보단 사실 극장을 좀 더 좋아하는 편이다. 좀처럼 대학로 갈 시간을 내지 못해서 그렇지(...)

 인상적인 건 젊은시를 뽑는 데에 나이 기준이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전에 읽었던 2012년 신춘문예에 허영둘이라는 연세가 제법 있어보이는 시인이 많이 등장했었는데 젊은 시로 뽑더라. 열 명 이내의 시인들이나 평론가들이 대체로 미래파라거나 산문시 중에서 잘 쓰인 것들을 뽑는 듯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심사위원단들은 젊은 시인 중에서 고전적인 서정시를 쓰는 사람도 뽑았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서론을 썼는데, 처음 젊은시를 발표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시인들이 심사기준을 잡고 늘어진다고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했던 게 아닐까 싶다. 젊은시를 올린다고 하면서도 서정적인 산문시를 그렇게 반가워하고 시대의 아픔을 담은 시의 약점을 찾기에 급급하니 말이다. 군데군데 쓰여져 있는 짧은 평론들이 시에 대한 선입견을 더욱 공고히하는 느낌이었다. 이러니 문학가들이 평론가의 개입이 없는 잡지를 찾아서 자신들의 작품을 올린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시가 너무 많아서, 시집에서 가장 인상깊은 시를 찾는 일은 이야기 시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시를 찾는 일이 되어버릴 정도였다. 오히려 서정시가 인상적일 정도였달까. 이야기 시가 실험적 소설과 구별되려면(요즘엔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허영둘처럼 사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스토리를 전개하거나 아예 생물인지 무생물인지도 알 수도 없는 어떤 것을 내세워야 한다. 여기에 뽑힌 시인들 중 몇몇은 그 강박에 너무 시달려서 오히려 시 자체의 흐름이나 완결성을 놓치고 있었다. 특히 성동혁은 정말 아까운 시인이었다. 하지만 반도네온이란 시를 볼 때 시적 배경은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잘 살렸다고 할까. 여태까진 기성세대의 시인들이 아무리 외국에 대한 시를 써도 여행자의 시각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성동혁은 화자 자체가 불투명한 그의 단점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여 낯선 세계에 잘 스며들었다.

 장수진 시인을 만날 수 있던 건 행운이었다. 최근 떠오르는 급진페미니즘의 노골적인 표현을 시로 잘 담아내서 그로테스크의 미학으로 소화시켰다. 평론가들이 뭐라고 하던 상관없이 그녀의 시는 전반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냈다고 본다.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여성을 사물로 취급했던 먼 옛날의 역사를 담아내었다고 할까. 시각으로만 표현이 다채로운 느낌이 들어 좀 안타깝긴 하지만, 그녀의 모든 시가 마치 한 편의 고어 영화를 보는 것 같아 흥미진진했다. 앞으로도 이런 시인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요즘 세상의 키워드는 뱀, 여성, 무당인 듯한데 셋을 합치면 센고쿠 나데코가 된다. 모노가타리 시리즈에서 절대적인 지지층을 갖고 있는 그녀는 이렇게 어느 작품에서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걸 보면 니시오 이신이 정말 굉장한 작품을 쓰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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