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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백석 시그림집
백석 지음, 곽효환 엮음, 김덕기 외 그림 / 교보문고(단행본)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황일 중에서
밭머리에도 복사꽃 피였다 새악시도 피였다 새악시 복사꽃이다 복사꽃 새악시다 어데서 송아지 매ㅡ하고 운다 골갯 논두렁에서
미나리 밟고 서서 운다 복사나무 아래 가 흙장난하고 놀지 왜 우노 자개밭둑에 엄지 어데 안 가고 누웠다 아릇동리선가 말 웃는 소리 무서운가
아릇동리 망아지 네 소리 무서울라 담모도리 바윗잔등에 다람쥐 해바라기하다 조은다 토끼잠 한잠 자고 나서 세수한다 흰구름 건넌산으로 가는 길에
복사꽃 바라노라 섰다

결국 이 시는 에반게리온의 신지와도 연결되며 우리나라의 대부분 교육받았으나 정치와는 그닥
연결되고 싶지 않은(신지도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무서운 로봇을 타고 싸우기를 거부했다.) 남성들과도 연결된다.
백석은 자신이 너무나도 일찍 고향과 떨어져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상적인 여인을 찾아서 고향을 다시 개척할 마음을 품었으나
그 여인은 자신의 절친에게 시집을 가서 아이까지 낳고 잘 산다. (그래서 프로포즈할 땐 친구를 데리고 가면 안 된다.) 아내가 있음에도 그는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그 여인을 잊지 못하며, 백석을 사랑하던 기생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버리고 북한으로 가서 양치기를 하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이상적인 고향은 그래서 이상적인 여인까지 더불어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여인은 놀랍게도 아이를 둔 유부녀나 아주
어린아이 시절의 무당 할머니로 자주 등장한다. (아주 바람직한 취향을 갖고 있다!) 다소 나이를 먹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시에 등장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복사꽃 그녀이자 그녀 복사꽃인 것이다.
그가 말하고 기다리는 나타샤는 파주라거나 강원도같은 (혹은 더 북쪽에 위치해 있는) 고향의 정서에 어울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일 수
있다. 그러나 비극적인 점은 어느 하나 그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납치해서라도 여성을 하나라도 데려오고 싶은 절박한 심정을
노래하지만 모두들 신여성이 되어서 돈이 있는 남성을 따르기 시작하거나 집안의 강요로 돈 있는 집안의 노예가 되었다. 백석의 후기 시로 굳이 갈
필요 없이 통영이라는 시에서부터 그 절망은 표현되어있다.
이도저도 다 서러운데 출근길 퇴근길 만원인 지하철에서 손 한번 잘못 간수하면 여자들에게 뺨 맞을 위험이 있으니 두 손 다 손잡이를 굳게
잡아야 한다. 철없는 백석은 모두가 조국과 민족을 구하기 위해 기나긴 싸움을 하는 동안 돈 없고 여자 없는 설움을 토한다. 사실 이게 보통
대한민국 남자들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백석은 얼굴도 잘생긴데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신사이다. 고향타령을 할 망정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이왕 찌질한 남자가 될거라면 모두들 백석을 본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