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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주해 이육사 시전집 ㅣ 원전주해 시전집 총서 1
이육사.박현수 지음 / 예옥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해후
모든 별들이 비취계단을 나리고 풍악소리 바루 조수처럼 부푸러 오르던 그밤 우리는 바다의 전당을 떠났다
가을 꽃을
하직하는 나비모냥 떨어져선 다시 가까이 되돌아 보곤 또 멀어지던 흰 날개우엔 볕ㅅ살도 따겁더라
머나먼 기억은 끝없는 나그네의
시름속에 자라나는 너를 간직하고 너도 나를 아껴 항상 단조한 물껼에 익었다
그러나 물껼은 흔들려 끝끝내 보이지 않고 나조차 계절풍의
넋이 가치 휩쓸려 정치못 일곱 바다에 밀렸거늘
너는 무삼일로 사막의 공주같아 연지찍은 붉은 입술을 내 근심에 표백된 돛대에 거느뇨
오ㅡ안타가운 신월
때론 너를 불러 꿈마다 눈덮인 내 섬속 투명한 영락으로 세운 집안에 머리 푼 알몸을 황금 항쇄 족쇄로 매여
두고
귀ㅅ밤에 우는 구슬과 사슬 끊는 소리 들으며 나는 일홈도 모를 꽃밭에 물을 뿌리며 머ㅡㄴ 다음 날을
빌었더니
꽃들이 피면 향기에 취한 나는 잠든 틈을 타 너는 온갖 화판을 따서 날개를 붙이고 그만 어데로 날러
갔더냐
지금 놀이 나려 선창이 고향의 하늘보다 둥글거늘 검은 망토를 두르기는 지나간 세기의 상장같애 슬프지
않은가
차라리 그 고은 손에 흰 수건을 날리렴 허무의 분수령에 앞날의 기빨을 걸고 너와 나와는 또 흐르자 부끄럽게 흐르자
페이지 :

이육사 시 두편에서 명백히 썸타다 헤어진 여성이 있는 거 같은데, 행동은 고양이요 눈은 마노같다길래 타카기가 생각났다. 크. 뺨에 고양이 수염 달아보고 싶다.
축구, 야구 등 외국에서 들어오는 운동들을 번거롭다 비판하며 장치기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경기종목으로 추천하는 걸 보면 확실히 이육사가 오래 전 시대의 시인이라는 게 느껴졌다. 시를 다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산문을 읽고나서 난데없이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독립운동가로서 그가 겪은 험난하고 고독한 현실에 대한 그의 묘사가 지금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물론 총은 고사하고 물대포만 나와도 일순간 몸이 굳는 우리가 총기를 다루는 실력도 천부적이라는 이육사 같은 독립운동가에게는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서 세상을 한탄하고 기회주의자들을 몹시 싫어하며 특히 '연애 포기'를 매우 안타까워하는 그를 보면 특히나 노동당 쪽이나 노조에 계신 몇몇 청년들이 떠오른다. (역시 사회주의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숨길 수가 없나 보다.) 이별을 읊는 그의 연애시에선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일본에게 감시를 받고 쫓기고 대부분의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사랑을 하고 싶어서 시간을 쪼개는, 남자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었다. 항상 음침한 자신을 비하하고 있지만, 좋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시 써야지 민중가요 작곡해야지 영화 시나리오 지어야지 노래를 불러대면서도 정작 라이브에서는 고음불가라 퇴짜를 맞는, 밉지 않은 한량으로 그럭저럭 젊은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시대의 평범한, 홍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젊은이로 말이다. 그 시대엔 마노처럼 취급받고 작품을 쓰면 여러 평론가가 해석에 뛰어드는 그런 이육사 시인이 그렇게 될 수 있다니 왠지 복잡한 마음이 든다. 결국 똑똑하고 잘난 젊은이들이 넘쳐서 여차저차 하다보니 청년들의 취업난이 형성된 건가 싶기도 하고.
더 읽고 싶었는데 짬짬이 쓰셔서 그런지 시는 40편 정도가 담겨 있었다. 그것도 조사가 진행되면서 이육사 시라고 밝혀진 게 더 늘어났다고 함. 읽을수록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시였다. 의외로 스토리성이 짙다고 할까. 진솔한 성격이셔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