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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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서 현기증이 났다. 내가 칼을 쥔 게 아니라 칼이 내 손을 거머쥐고 여자 안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저항이 용납되지 않는 무지막지한 장력이었다. 눈앞이 와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칼을 든 손이 저릿저릿했다. 음속을 돌파하는 듯한 충격이 몸을 덮쳐왔다.

 

  

그러고보니 종의 기원을 가지고 독서모임에서 한 이야기를 정리해야겠구만.

 

1. 일단 스릴러인데 이야기가 너무 루즈한 데서 실패한 소설이라는 데서 만장일치.

2. 퍼걸러가 대체 뭔지 아무도 모름. 일단 복층아파트에서 살아봤어야 알지.

3. 그 와중에 방이 상당히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빨간 이미지에서 영화를 노린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요즘엔 애니도 영화화하고 돈 벌려고 소설 쓰는데 뭐...

4. 근데 왜 남자애는 여자만 줄창 죽이고 남자는 안 죽이냐에서 많은 의견이 있었다. 여기서 내 주장은 일단 여자 사이코패스도 남자를 죽이지만, 사례가 드물고 가족을 노리는 경우가 가장 막장이지만 돈을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상당히 용의주도적으로 계획을 꾸민다는 점. 결국 여자가 남자를 죽이려면 상당히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왜냐하면 남자가 힘이 세니까. 내가 자주 말하는 것, '남자가 무섭다'는 건 바로 그 이유이다. 어느 하나에 집착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본능으로 넘어가는 게 남자들이다. 그리고 본능으로 넘어가면 힘 없는 여자들을 죽이며 남자들과는 가급적 충돌을 피하려 한다. 사이코패스는 무조건 관계를 상하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하류층인 인간이 감히 상류층인 자신을 억압한다는 데서 불만이 온다나?

5. 그러나 나는 조현병 외에는 이 소설에서 다른 정신병이라거나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 결국 악의 특수성을 다루려 했지만 악의 평범성하고의 간격이 너무 얇았다는 게 이 소설의 단점이다. 의도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러고보니 테드 강의던가 거기서 한 유명한 사람이 우연히 사이코패스 검사를 했는데 99%가 떴다고 하더라. 의외로 사이코패스는 가까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도 조금 그런 성향이 있고 아마도 내 두번째 애인도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6. 점점 소설이 설명투로 나아가는데, 소설은 스토리의 룰을 설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수록 가망이 없다. 사실 나는 정유정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지만, 남성의 본성을 모르고 무서워하지 않는 여성이 읽기엔 딱 좋은 책이다.

P. S 종의 기원을 가지고 읽기 버겁다, 이전과는 다른 글을 가지고 왔는데 왜 이런 걸 썼는지 모르겠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돈 많이 벌고 지가 쓰고 싶은 소설 쓰겠다는데 너네들이 뭔 상관이냐. 그리고 혹시 사이코패스같은 인간들에게 마음껏 폭력을 쓰고 거리낌없이 혐오를 드러냈던 지난 시절이 생각나서 혹시 찔렸던 거 아니냐. 항상 책에서 공감을 느낀다거나 교훈을 느낀다거나 하는 책들만 보다가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책을 접하니까 머리가 아프면서 학습할 수 있는 책이 그리워진거냐. 그러나 그건 주인공과 이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저지르는 자기합리화와 다를 바가 없다. 자기합리화를 밥먹듯이 저지르던 지난날이 떠올라서 머리가 아프다고 솔직히 자수해보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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