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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 할 일들 ㅣ 창비시선 390
안주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평점 :
밥 먹는 풍경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 먹고 있었다

물론 아무도 죽음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자살도(만약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남의 목숨을 끊는 것도 의외로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목숨은 오죽하겠는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은 지키려 하는 게 있고 아픔없이 죽고 싶어할 텐데, 모든 리스크를 뚫고 자살에 성공을 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그렇게 죽으려고 태어난
삶이 아니었을까.
이 시집에서 시인은 간절히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끝장내고 싶어한다. 가난도, 이기심도, 욕망도,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일들도, 그는
시에서조차 숨길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끝장내는 데에 실패한다. 꿈을 지우개로 지워내다가 결국 아내의 혈관을
지워내고, 가족들이 운영하는 슈퍼를 팔아치우려다가 어머니에게 맞는다. 그는 겉포장만 잘 되 있는 자신의 마을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희망 때문에, 그것을 부술 수 없다 생각하기에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 생을 흐릿하게 살아가며
시인은 다음 생에 할 일들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한다.
이는 수동성이 아니다. 가뜩이나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데 그보다 더
비겁한 일을 저지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는 그래도 나와 밥을 같이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요새 혼밥이라는
단어가 생겼는데,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밖에서 밥을 사 먹는다면 주방 직원이 만든 밥을 먹을 테고, 집에서 밥을 먹는다면
재료를 누군가에게서 사왔을 텐데, 어떻게 '혼자서'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무인도같은 곳에서 혼자서 있다면 오랫동안 밥을 먹을 수나
있을까? 아무튼 우리의 주위엔 항상 누군가가 맴돌고 있고, 죽음으로서 그런 사람들을 내버리고 도망친다는 건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넘치는 도심 사람들과 다르게 인간이 적은 시골 마을에서 그런 인심이 상당히 선명하게 존재한다는 건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다. 마치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 산소의 중요함을 절박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