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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 제3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ㅣ 민음의 시 206
기혁 지음 / 민음사 / 2014년 12월
평점 :
인질극
두려웠던 것은, 그림자 때문에 내뱉은 독설이나 그림자칼에 찔려 흐르는 피가 아니었습니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바라보는 표정과
그림자의 목소리와 여전히 장난처럼 가슴께를 짓밟았던 낙관주의자들의 체면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다는 속단만큼 가로등 밑에는 더 많은
그림자들이 편견으로 드러났지만, 인생의 가장 밝은 곳을 들춰 보다 하얗게 눈이 센 인질들을 저녁이라 불러서는 안 됩니다. 가족을 잃은 자들이
서쪽의 행렬을 이룰 때 그들의 슬픔은 여전히 임의 동행 중입니다. 자신의 그림자에 칼날을 겨눠 본 사람에겐 빛이 닿지 않는 부분에도 얼룩이
남고, 얼룩을 들키지 않으려 등을 맞댈수록 이불 위에선 매번 같은 모습의 갈피가 떨어졌습니다. 하오의 그림자가 지구의 면적을 비좁게 만드는 사이
갈피를 쥔 손들이 천성을 가리킵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의 그림자를 향해 손 내밀 수 있다면 석양의 끝자락에 붙은 수배 전단은 당신의
거울입니다.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시 내용에 깜짝 놀랐다. 동시에 초등학생이 15세 이상 게임을 한다고
신고한 게 아니라 한조를 한 게 용서할 수 없어서 피씨방에서 누군가가 그대로 경찰에 신고했다는 소식이 생각났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앞으로
게임문화가 통제 당할 때 여가부나 메갈 탓만 하지 말라는 글을 남겼다. 사실 근본으로 들어가보면 게임은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하면서
멋대로 '진정한 게임'에 대한 믿음을 구축하는 게 폐혜이다. 마치 일베와 다를 바 없는 메갈을 가지고 '진정한 페미니즘'을 강요하던 때와 같이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네들이 진정한 양성평등 어쩌고 해서 원래 LGBT 다 포함시켜서 성평등이라고 단어가 엄연히 있는 문화를 퇴보시켜버리고,
페미니스트가 안 좋다고 해서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읽으면서 니네가 말하는 진정한 페미니즘을 배운다는데, 이 인간들은 자꾸 아 몰라
메갈논리 메갈과 일베는 같다 빼애액 이러고 있으니 수도권 지하철에서 항상 시달렸던 불신지옥이 생각나면서 자꾸 너네 교회 안 다녀요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들이 믿는 종교엔 신이 없다. 하지만 목표가 없는 믿음은 갈팡질팡하여 차라리 교회를 다니느만 못한 상태를 초래하고 있다.
기혁 시인의 여정은 고단하다. 가족들이 모두 종교를 믿는데 자신만 회의적이고, 어쨌던 자신은 일함으로서 가족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나 신이 우리 가족을 잘되게 해줄 거라는 거의 근본적인 낙관에는 치가 떨리고, 그러는 사이 성장하면서 자신은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남들에겐 그걸 숨기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거 같고, 그래서 시는 마치 프란츠 카프카가 시를 쓴 것처럼 우스꽝스러워진다. 그는
마우스피스를 입에 문 채로 주먹을 날리는 문단계의 키보드워리어이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면 모노가타리시리즈에서 태클 잘 거는 아라라기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 속 그늘과 기이한 것들을 추구하면서도 게임 주인공보단 NPC들의 세계를 깊이 존중하는 그의 시는 난해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일기처럼 보이는 특이한 성질이 있다. 그의 시에서 긴장감이 드러나는 이유는 현실과 감정 사이에서 삐딱하게 줄타기를 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시의 평론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감정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난해하다고 비난하던 일기쓴다고 비난하던 난 이 시인의 다음 시집을
주목하게 된다. 그는 어떻게 성인이 된 몸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같은 정신을 짊어지고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썩어가는 믿음들을
깨부수고 인간의 가능성을 표지로서 땅 위에 세울 것인가.
P.S 저에게 페이스북에다가 일기 쓴다고 부들부들거리며 비난하던 차재현
씨.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일기에 영감을 받아서 이런 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