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코 상
사노 요코 지음, 윤성원 옮김 / 펄북스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은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는 하지 않는 게 낫단다. 두 번째쯤 되는 사람과 하는 거야."

 

 

 

사노 요코는 이 말에 어머니에 대한 반발감이 생겼다고 했다. 어쩜 이렇게 모진 인간이 있을 수 있냐고. 사노 요코를 학대하다시피 키운 시즈코 씨는 결혼 때도 사귀고 있던 남자를 차고 그 남자의 친구를 꼬셔서 결혼했다고 한다. 이유는 학력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성격이 굉장히 나와 닮았다. 

 

 그런데 그녀가 만난 며느리가 만만치 않다. 그녀는 시즈코의 아들이 공무원이라는 데 혹해서 결혼했다는 듯하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서도 아이에게 너무나 관심이 없고 과격한 본색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남편(즉 사노 요코의 남동생이자 시즈코 씨의 아들)이 음주운전으로 사고치고 이혼하고선 꼭지가 돌았다고 한다. 솔직히 그 시즈코 상의 며느리였으니 난 그 상황을 다 이해는 하는데 아침마다 전 남편에게 공무원이니 잘 살 줄 알았다는 둥 고래고래 소리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무튼 사노 요코는 그 사건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떠돌이가 되고, 무슨 내역인지 자세히 말해주지 않지만 다친 이후로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단지 남자에 대한 취향이 분명해서 생긴 일일 뿐인데 딸 사노 요코가 이후의 상황이 자업자득이라는 마냥 글을 쓴 걸 보면 그닥 마음에 들지 않고 시즈코 씨가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시즈코 씨와 거의 비슷한 성격을 가져서인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프로그래시브적인 성격을 가지신 분으로 할머니가 있는데, 그 분은 젊은 날 쌀 40kg을 머리에 이고 새참을 든 채로 논밭을 뛰어다니신 분으로, 뇌졸증 이후 약간의 치매끼가 있어서 자주 생뚱맞게 남을 모함하시지만 그래도 나머지는 정정하시다. 그런데 내가 얼굴도 성격도 그 할머니를 쏙 빼닮았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시즈코 씨가 결론적으론 시집을 잘 가신 것처럼 할머니도 조선 선비같은 할아버지를 만나셨었다.

 좋은 글은 자꾸 나에게 긴 글을 쓰고 싶어지게 한다. 이 짧은 책을 읽으면서 자꾸 가족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즉 어머니의 시아버지)를 정말 존경해서 아버지와 결혼했고 할아버지처럼 자다가 죽고 싶으며 외할아버지(즉 어머니의 친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고 치매에 걸리고 싶지 않다는 어머니가 유독 더 생각난다. 아버지에겐 고독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고 어머니에겐 덜렁거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아버지는 그렇다치고 어머니는 어떻게 그 건망증을 숨길 수 있는 걸까...밖에서는 세련미 넘치는, 딸인 나보다 더 젊어보이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항상 동경의 대상인 어머니. 난 몸이 굉장히 아파서 친구랑 놀지도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책만 읽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금방 죽을까봐 '너만은 남은 생에 부모의 사랑이라도 듬뿍받아라'라고 생각하며 키웠다고 하신다. 그래서 후회한다며, 30살까지 살 애였으면 내 남동생인 아들에게 사랑을 더 쏟을 걸 그랬다며 불평을 하시는데 나도 사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고 (...) 그래도 난 어머니에게 이렇게까지 원한을 품거나 할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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