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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297
이창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ㅡ누렁이에게
갑자기 비 듣는 소리에 집 주변을 살피러 밖으로
나간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산을 펼쳐 든 그가 내 앞으로 온다)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든 그가 목줄을 끌며 집 밖으로
나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지체없이 그 앞으로 나간다)
나는 비 맞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라며 소리친다
(나는
꼬리를 흔들며 그의 의중을 살핀다)
나는 그를 집으로 몰기 위해 발로 위협한다
(나는 일단 땅에 바짝 엎드리고는 꼬리를
감춘다)
나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을러대며 그의 등을 발로 떠민다
(나는 두려움으로 약간 몸을 움츠리며 그의 발을
견딘다)
집 안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허겁지겁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몸을 일으킨 뒤 비에 젖은 몸을 흔들어
턴다)
길고 시시껄렁한 안부 전화를 끊고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본다
(무슨 일일까? 그가 다시 나올까?)

평론을 쓰는 사람도 은근히 부러움을 강조하던데,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삶은
왠만한 자본이 밑바탕으로 깔려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 왠만한 소도시에서도 10년 이상 거기서 살지 않으면 현지인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인은 이 시집을 출간할 때쯤 40대가 되어가고, 시골로 간 지는 10년이 다 되어 간다고 했다. 유독 다른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시가 많은 점이 그의 여유로움을 상징한다. 집에 손님도 초대할 만큼 몸도 마음도 넉넉해진 이창기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다 자신의 뜻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 흘러가서 살게 한다. 보통 자신감이 아니다.
그러나 2부에서 그는 자신이 생명과 교감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솔직히 토로한다. 해학의 중간중간에 집요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텅 빈 집과 그가 맞닥뜨린 고독, 대사 하나 없는 노동 혹은 몸부림은 난데없는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그와 같은 6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게 시를 썼지만, 일면 보편적인 점이 있는 이유는 그가
시대를 넘어서 생명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로 내려가도 굶어죽지는 않는 그의 재산도 부럽지만, 그의 깊은 관찰력과 생각도
질투의 대상이 될 만하다. 아무나 시골로 내려갈 수 없고, 아무나 속이 꽉 찬 글을 쓸 수 없다. 둘 다 성취하기는 더더욱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