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이정하 지음 / 푸른숲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그대에게 가자

가자, 밤열차라도 타고.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수 년 간 떠돌던 바람,
여지껏 내 삶을 흔들던 바람보다도 더 빨리,
어둠보다도 더 은밀하고 자연스럽게.

가자, 밤열차라도 타고.
차창가에 어리는 외로움이나 쓸쓸함,
다 스치고 난 후에야
그것들도 내 삶의 한 부분이었구나,
솔직히 인정하며.

가자, 밤열차라도 타고.
올 때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으면
내가 먼저 찾아 나서자.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두 팔 걷어부치고 대문을 나서자.

막차가 떠났으면 걸어서라도 가자.
늘 내 가슴 속 깊은 곳
연분홍 불빛으로 피어나는 그대에게.
가서, 기다림은 이제 더 이상
내 사랑의 방법이 아님을 자신 있게 말하자.
내 방황의 끝, 그대에게 가자.

 

 

아마도 3호선 버터플라이라는 인디 밴드가 부른 노래 가사일거라 생각하는데 대충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오랜만에 어떤 동네로 돌아와 자주 갔던 어떤 가게로 갔었는데 그 가게는 문을 닫았더라고 한다. 매우 아쉽고 결국 이 동네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의 모습도 이 동네에 있을 때와는 아주 다르게 변해있었다고. 

 이 시를 계속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이 시인은 자신을 떠난 사람을 찾으러 갈 수는 있지만 자신을 만났던 적과는 달리 변해있는 그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서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거라 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도 어쨌던 '네가 만나지 않겠다면 내가 만나러 가겠다'에서 '네 변한 모습을 보기가 싫다'로 변했다. 그러나 그 결심조차 단지 논리정연한 이론상에서일 뿐일 듯하다. 무대 위만 계속 쳐다보고 있다면 현실 세계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대를 생각하다가 전화를 할까 싶어서 핸드폰만 들고서 밝아진 화면을 한동안 빤히 쳐다볼 수 있다. 그 때 우리는 핸드폰의 그 빛 속에서 그대를 연상할 수 있다. 혹은 꿈에서 시덥지도 않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손을 잡고 걸었던 그 때의 그대를 볼 수도 있다. 사람은 잠을 자야하며 너무 깊이 잠들지 않는다면 반드시 꿈을 꾼다. 행운일 수도 불행일 수도 있는 꿈의 요소. 그 꿈을 하잘것 없는 미신이라 치부하며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고, 그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SNS 같은데다가 한 줄로라도 글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이정하는 그 중 후자가 아닐까 생각되는 바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가 만났던 인연이 그를 아주 감성적으로 적셔주었고, 꿈을 꿔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으로 변모시켰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안에 추억을 담아두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기다림만이 사랑의 방식은 아니듯이, 기억을 자꾸 꺼내는 것이 반드시 마음을 무감각하게 하는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것은 '다른 사람을 만나라'라는 이성적인 충고를 애써 외면하는 가슴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쩌면 네가 눈부신 이유는 단순히 너를 바라보는 나의 눈에 눈물이 맺혀서 시야가 가려진 탓에 그리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성적이지 못한 게 반드시 나쁠까? 이정하의 시는 사랑에 미친 사람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오류들을 바라보고 손을 뻗어 쓰다듬으로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어떤 연애개론서가 이 고매한 슬픔에 츳코미를 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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