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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적 체질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평점 :
홍길동전
지 에미 이름도 모르는 꼴통 새끼!
군대 훈련소에서 처음
호적등본에 박힌 법적, 어머니 이름을
알았는데
아버지가 아버지가,
스물세 살 아들과 숨바꼭질하자는 것 같아서
우히히,
웃음이 나왔고 군댓말로
좆나게
맞았다
바햐므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는 세월이
느릿느릿 나를 데리고 흘러갔다

내가 이 시를 인상깊은 구절로 추천하는 이유는 그의 시가 날것이며 도통 어렵지 않은
시이면서도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썼음을 나타내보이기 위해서다.
<너무 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자신이 썼음을 <너무 깊은 사랑>이라는 시에서도 나타내고
있고 그는 TV에서 농담조로 '저작권을 붙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했지만 그 시 안에서 그는 퍽이나 진지하다. 여성이 남성을 죽이고, 남성이
여성을 버리는 과정을 거기서 그는 자못 유머스럽게 묘사하려고 하며, 그로 인해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는 걸 숨기려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너무나 세상에 상처를 받다보니 방어적으로 터득한 기술임이 역력하다. 또한 역사저널이 상당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상당히 마른
체격의 꺽다리 류근이 점잖게 앉아있지만, 술냄새 풀풀 풍기며 마구 날뛰고 절규해대는 이 시집을 보면 동일인물이 맞나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이 세상을 견디기 위해서만 태어난 건 아닐진대.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일찍 철이 들어 아직 철들지 않은 척 바보인 척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걸까? 시인의 현란한 욕설과 유머감각에 웃음을 짓다가도 왠지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생각나서 잠시 숙연해지는
것이다.
그는 성적 농담도 많이 하지만 수준도 있다. 특히 구멍경이라는 시에서는 남자들에게 애꿎은 여성들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자기
자신의 '구멍'에 박아넣으라는 엄청난 충고를 우회해서 날린다. 성평등을 이룩하시려는 것인지 '바람피는 내 여자'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 여성을 욕하기보다는 왠지 그 여성을 거쳐간 남성들을 비꼬는 태도를 보인다. 상당히 아름다움에 대한 추종이 확고하시던데 여성은 일단
무조건 아름다우니 비판에서 제외하시는 걸까? 어쩌면 아름다움을 '여성'으로 비유했으며, 그녀를 거쳐간 많은 남성들의 정체는 '학자를 꿈꾸며 잘난
체하는 사람들'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자신의 이야기를 20년 동안이나 떠안고 있는 건 못할 짓이다. 그러나 그 동안 그의 상처도 예술로,
인간 세계로, 삼라 만상의 이치로 승화된 듯하다. 그리고 저질 포르노도 아닌 저질 신파극도 아닌 시집이 탄생하였다. TV에서 "모든 남자들은
자신 혼자서 남자로 남겨진 모습을 꿈꾸게 된다"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혼자서 이 생에엔 오지도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죽을 때까지
청춘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시인은 이를 진정한 지옥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애인과 헤어지고 온 남편을 위로해주는 아내와 새로운 만남을 격려하는
아이들처럼 우리 독자는 그 말이 진짜인지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혼자서 남자로 남겨진다는 말은 어쨌던 미래 만나는 사람들이 당연히 여자들임을
전제하는 게 아니겠는가! 어떤 인터뷰에서 시인에게 '실제로 집에서 그래요?'라고 물어보던데, 굉장히 무례한 질문이라 생각한다. 프라이버시라기보단
작품의 질을 낮추고 예술가를 무시한다고 할까.
생존법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한다 가령 내 친구 청명
한의원 엄익희 원장이 약 먹는 동안 술 먹지 마세요, 하면 짬뽕 국물에 소주 마시고 대학로 마리안느 가서 2차로 흑맥주 마신다 술 마실 때 옛날
애인이 제발 안주 좀 먹어가면서 마셔, 라고 말하는 순간 안주 접시가 보이지 않는 이적을 경험하고 할렐루야, 아내가 새벽 기도 가자고 하는
날부터 새벽에 귀가한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한다 하라는 대로만 하면 여기가 인쇄소 식자공 작업장도 아니고 하라는 대로만 하면 내 인생이 내
인생인가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다 보면 나는 반짝이는 외로움과 자주 만나게 되고 길의 맨 가장자리로만 걷게 되고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직장은 자주 바뀌고 봄에 집에서 출근했는데 갑자기 해고 통지서 받은 오후에 눈발이 흩날리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한다 하라는 대로만 하는 놈들은 오징어 꽁치 고등어 멸치 들처럼 삽시간에 한 그물에 잡혀들게 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한번
생각해보라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오징어 꽁치 고등어 멸치가 대오를 이탈해 제멋대로 쏘다니는 편이 그나마 그 무지막지한 그물에
일망타진되는 수모를 조금이나마 면할 수 있지 않겠나 누가 나를 세상에 던져두고 하라는 대로만 하라고 충고 충언 충심으로 권고하는지 나는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할 때마다 지느러미가 솟아나고 하필이면 사람이 되고 싶었던 벰 베라 베로 요괴인간 삼형제가 생각나고 금방 고단해져서 텔레비전
끄고 어서 애국가 부르고 물구나무서러 가고 싶다

아주 낯선 이름도 아니고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70년대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모습이
굉장히 컬트적이다. Dirty harry 부른 고릴라즈가 떠오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