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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평점 :
아무리 세련된 연애심리도 그 깊은 곳에는 사나운 자연이 숨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과 이미지도 그렇고 가벼운 듯하면서도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들도 그렇고, 이 시인은
상당히 센고쿠 나데코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이 캐릭터가 중학생이었으니, 이 시인이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싫어한 이유가 자신의 나이를
자각하게 되서였다면 상당히 이 시는 성공적으로 젊음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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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으면서도 활력이 있는 시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다루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서
약간 벙쪘다고 할까. 전쟁을 일상에서 겪어본 분이라서 그런지 파격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도 태연하게 시체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었다.
요즘 에세이로 유행하는 사노 요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어떤 사연으로 이혼을 하시고 각각 활동을 하게 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금 동업자끼리 같이 결혼해서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부부 중 한 쪽에 가족의 불화가 있다면 가정을 이루기가 쉽지
않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시인에 대한 소개에서는 '개나 고양이도 키우지 않는' 독거노인으로서의 생활에도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난날
시인의 시까지 담은 이 시집에서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일면 쓸쓸함을 자아내는 요소가 있었다. 시를 사생활과 연관지어서 쓰는
시인들의 유일한 폐단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 외로움과 씁쓸함을 묵묵히 견디는 시인은 절대 시에서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마저도 시인이 의식적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난 이 시집의 제목 중 '고집'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신경이 쓰였다. 포임 아이, 즉
시적 관점 같은 것을 갖기 위해 가족들을 잃어버린 그의 슬픔같아 보여서.
빌리 더 키드
고운 흙이 먼저 내 입술에 그리고 차차 큰 흙덩이가 내 다리 사이에 배 위에. 개미집이 부서져 개미 한 마리가 내리덮은 내 눈꺼풀 위를 잠깐 긴다. 사람들은 이제 울지 았고 삽질하며 상쾌한 땀을 흘리고 있는 모양이다. 내 가슴에는 그 상냥한 눈의 보안관이 뚫은 구멍이 두 개 있다. 내 피는 서슴지 않고 그 두 개 도피로로 빠져나갔다. 그때 비로소 피가 내 것이 아니었음을 확신했다. 피가 그렇게 되면서 내가 조금씩 되돌아가고 있음을 알았다. 내 위에 내 유일한 적수인 건조하고 푸른 하늘이 있다.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 내가 달려도 쏴도 심지어는 사랑해도 내 것을 빼앗기만 해온 그 푸른 하늘이 마지막에 단 한 번 빼앗지 못할 때. 그게 내가 죽을 때다. 이제 나는 빼앗기지 않는다. 나는 비로소 푸른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 침묵도 그 끝없는 푸르름도 무섭지 않다. 나는 지금 땅에 빼앗기고 있으니까. 나는 돌아갈 수 있다. 더는 푸른 하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내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이제 내 목소리는 응할 수 있다. 이제 내 총소리는 내 귀에 남는다. 내가 듣지도 쏘지도 못하게 된 지금.
나는 죽이는 것으로 사람을 그리고 나 자신을 확인하려고 했다. 내 젊은 증명법은 붉은 피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남의 피로 푸른 하늘을 온통 칠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 피를 원했고 오늘 그것을 얻었다. 나는 내 피가 푸른 하늘을 어둡게 하고 마지막에는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제 푸른 하늘을 보지 않는다. 기억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 땅의 냄새를 맡고 내가 땅이 되는 것을 기다린다. 내 위를 바람이 흘러간다. 나는 더는 바람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곧 내가 바람이 되니까. 곧 나는 푸른 하늘을 모르면서 푸른 하늘 속에 살 것이다. 나는 별이 된다. 모든 밤을 알고 모든 한낮을 알고 그러면서도 계속 떠도는 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