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민음의 시 53
사이토우 마리코 지음 / 민음사 / 1993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어깨만이 되며 거리에 넘친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되며 우리를 싣고 달린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되며 타닥타닥 걸어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으로 남아 서 있다

사람들이 어깨만이 되며 부딪쳐 간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되며 우리를 버리러 달려간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되며 넘어져 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 남아 짖는다
어깨 너머 잊혀진 달이 헐떡거린다

이 어깨에는 그림자가 없다

 

 

 시인의 글로만 봐서는 이미지가 정확히 이렇게 생겼다. 실제로 책 표지의 사진도 초미인이심 ㅎㅎ

 

 방송에서 한 부분은 생략하고 잠깐 이야기하자면, 이 시인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선 녹색의 기운이 상당히 충만하다. 미루나무는 글쓰는 사람들 누구나 좋아하는 나무인가보다(...) 한국어의 '나무', 일본어의 '키(나무)'라는 단어를 비교하면서 혼자서 즐거워했을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여성이 산책을 하기 시작한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영국에선 여성에서 재갈을 물리기도 했다는 일화는 요새 상당히 회자되고 있지만 그때엔 일상이었다. 지금은 섬에서 태어나 살던 여성이 (삼면이 바다이고 다른 한쪽은 건너갈 수 없지만) 적어도 대륙과 연결된 다른 나라까지 바다를 건너 제법 먼 산책을 나왔다. 밀폐된 섬에서 여성은 얼마나 제약을 받았을까. 한국 시인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의 주위의 눈은 얼마나 매서웠을까... 살았던 시대는 다르지만 좋아하는 시인이 거닐고 시를 쓰고 했던 곳을 직접 겪기 위해서, 그녀는 한국에 왔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목도한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에 기가 꺾이긴 했지만, 그러한 비극이 없었다면 윤동주의 시가 탄생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시인과 이 시집을 읽는 독자를 같이 감동시키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한국어가 다소 서툰 점이 있었지만 그 점이 오히려 시를 더 빛나게 해주었다. 저 '어깨만'처럼 말이다. 내 시집만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쇄소의 잘못 때문에 군데군데 짤린 시들이 많아서 안타까웠다. 보기 드문 시들이었는데 잘 출간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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