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백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32
박승 지음 / 실천문학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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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박승

 

날씨가 차가워지면 북쪽에서 반가운 소포가 온다

 

눌러쓴 주소 안고 비닐로 겹겹이 싸여 석류처럼 빨갛게 가자미 온다

 

동해 먼 곳 외할머니 보내신 식해 빨간 피보다 전설이 많아 이 생 저 생 녹아 있다

 

무 고추 마늘 메좁쌀 엿기름 물 떠난 생물 몸 비비고 피나누며 숨죽인다

 

만삭의 독 소식 풀면 끊어진 몸 추슬러 살 속 흰 뼈를 녹인다

 

바다를 기억하는 날개 하나가 되어 헤엄치고 오래고 삭고 긴 가계 겨울에서 겨울로 익어간다

 

낮은 해류를 지나온 가자미 식탁에 올라 붉게 아침을 토한다 달이 가까운 또 어머니의 눈이 내리는 이곳

 

 

 

 

 

  

왠만하면 속초의 유명한 식당 모두 가자미식해를 반찬으로 내놓는다.

하지만 가자미식해를 굳이 먹고 싶어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장수면옥을 추천한다.

(검색해보니 이 식당밖에 안 나온다;;; 홍보를 잘하는 듯?)

가자미식해를 따로 포장해서 준다고도 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한동안 회를 싫어했던 내가 속초와서 처음으로 먹었던 회가 가자미식해였다. 그 이후부터 어떤 물고기건 회는 잘 먹게 되었고 이젠 물회마저도 섭렵하기 시작했다. (성게나 말미잘같은 건 빼고.) 시인이 밀양 출신이라길래 별로 기대 안 했었는데 의외로 영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반가웠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자란 곳을 시인이 매우 선호하는 것 같고, 대체로 여성적인 것들을 상당히 좋아하시는 것 같다. 성적인 의미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조숙하고 모성적인 뭔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초연함과 강인함을... 그것도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의 독한 모습을 가장 좋아하는 듯하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왠만하면 좋아할 수 없는 여성의 면모를 좋아하는 데서 범상치가 않다. 주어와 목적어와 마침표가 두서없이 뒤섞인 어투에서 어른들이 카드판을 이리저리 뒤집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아이의 모습마저 엿보였다. 옛날을 회상하면서 자신을 어린 아이로 만들어놓은 것일까. 그러고보면 이 시인이 누님 취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위치백이라는 표제시에서 시인은 뒤로 뒤로 물러가 추억으로 돌아간 뒤 잠시 팔이 가느다란 사람의 손을 꼭 잡는데, 난 시집 말미에서 해설가가 설명한 것처럼 그 사람의 정체가 시인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아내와 딸에 덮여서 드러나지 않은, 박승 시인의 아버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자신이 가장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하나의 인간이라 인정할 수 있어야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박승 시인은 굳이 스위치백을 표제로 삼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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