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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유일하게
믿었던 키누요한테서도 버림받고, '누구 남은 사람 없어요' 하는 질문에 손을 들어올릴 때의 그 비참함. 적어도 입으로 대답했으면 좋았을 거다.
두리번거리다가 말없이 이마 높이까지 손을 들어올리는 내가 마치 무슨 괴물 같았겠지. 또 다른 나머지 한 사람도 나처럼 비굴하게 손을 드는 방법을
취해 씁쓸했다. 이 들어올린 손으로, 아직까지 반에 친구가 없는 인간은 나와 또 한 명의 그 남자아이, 니나가와뿐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묘사되는 여주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라면 이쪽이 아닐까 싶다.
보이쉬한
캐릭터는 꾸준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보이쉬한 측에 속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딱히 여자력을 과시하고 싶지도
않지만(여자력이란 말만큼 여자에게 폭력적인 단어도 없다.), 설령 여성스럽게 소녀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해도 그게 더 부자연스러워 보여서 보이쉬라는
딱지가 붙어버린 사람도 있다.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라 말하고 싶다. 여기서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불쌍할 만큼이나 조숙하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중학생 시절에 대한 언급이 잠깐
등장하는데, 아무리 독백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그렇게 급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다 털어놓지 않는 그녀의 현명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그녀는
소설 중반에 자신이 비뚤어진 생각을 지녔다고 자학하지만, 글쎄. 그녀의 회의주의는 사실 사회의 근본적인 액면에 맞닥뜨린 20대 초중반의 사람들이
학교에서 강제로 심어준 이상적인 환상 세계를 저버릴 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절망감에 가까웠다. 아마도 키누요같은 친구에 의해 계속 압력을 받은
탓에 더 쪼그라들었겠지. 여름엔 이렇게 잠깐 사랑과 호기심을 키웠겠지만, 여주인공과 니나가와가 맞닥뜨릴 세계는 혹독할 것이다. 2학기가 되면
하츠의 예측대로 될 것이다. 일단 2학기가 시작되면 니나가와가 먼저 폭행을 당한다. 하츠는 니나가와를 밟는 사람을 몰래 부러워하겠지만, 그것도
잠시. 하츠가 니나가와를 좋아하는 걸 눈치챈 키누요가 자신들과 친한 다른 무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이다. 결국 니나가와와 똑같이 하츠도
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츠는 니나가와의 등짝을 밟아야 할 것이다. 그녀도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처음 니나가와의 집에서 니나가와의
오타쿠적인 액면 그대로를 발견했을 때 그를 사정없이 찬 데에서 그렇다. 니나가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하츠가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츠는 니나가와의 등짝을 지긋이 밟을 뿐, 때리지 않는다. 이는 결국 그녀도 조만간이던 좀 더
늦던 간에 니나가와같이 왕따나 폭행을 당하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고등학생 때의 인간관계는 성인이 되도 그 특성이 바뀌는 경우가 결코 없다.
니나가와 또한 자신의 등을 (아마도) 처음으로 때리고 밟은 하츠의 발가락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느 쪽이나 쉽게 잊지 못할 청춘이 되리라는 건
자명하다.
그리고
나는 여주가 니나가와에게 느낀 공감 이전에 키누요와 여주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 그리고 다른 여자 아이들의 브래지어를 빤히 쳐다보는 그 시선에서
굉장히 퀴어함을 느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설이 나왔다면 기독교들의 반발에 의해 동성애를 조장하는 작품으로 찍혀 매장당하지 않았을까,
라고 멍하니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도 니나가와같은 남자랑 사귀면 안 된다'
라는 말을 꼭 한 마디 남겨주고 싶었는데,
와타야 리사가 2012년에 이런 내용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 작가도 살면서 한두번쯤 우유부단한 남자한테 데였던 것일까.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