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미시령 창비시선 260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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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려고 아들을 불러 앉히고 그 중태를 죽죽 찢어 입에 넣어주었다 그 황태 쓸개 간 있던 곳에서 눈 냄새가 나고 납설수 냄새도 나자 아버지 냄새가 났다 슬프다기보다 50년 신춘에 이렇게 건태 뜯어 먹는 버릇도 아버지를 닮았으니, 아들도 나를 닮을 것이다-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중

 

 

위의 문구는 훈훈해보이지만 어찌보면 끔찍해보이기도 하는 게 사실.

 

 시집 전체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고형렬 시인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처음 내 마음에 들었던 시 양양 내수면연구소에서 들여다볼 수 있듯이 자라면서 서울 등지를 돌아다닌 듯 하지만, 여전히 속초를 잊지 못하는 그의 마음이 시집 전체에서 구구절절이 잘 들어있다. 그는 자기 자식과 자신의 관계에서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와는 다른, 친구같은 관계를 성립한다. 요즘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아버지의 표본이 되야지 결정하기라도 한 듯. 하지만 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도 결국 그의 시만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은근히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희망하면서도, 남겨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하고 두려워한다.

 

 속초로 오는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고속도로라던가 미시령을 넘으면 그제야 속초로 들어간 느낌이 든다. 서울에 간 사람들은 자신이 강원도 속초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난 이전엔 부끄러워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그곳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마치 보물처럼 숨기는 느낌이다. 속초 사람들은 그네들끼리 반쯤 자랑스러워하면서 이야기한다. 한 번 이 지역으로 들어서면 다시 빠져나가기가 어렵다고. 그 말을 웃어넘기지 못하고 속초 시인은 이런 시를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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