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1144호 2015.09.22
위클리경향 편집부 엮음 / 경향신문사(잡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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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의 재혼, 동거, 별거, 편부모, 동성결합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불법적' 상황에 놓인 가정이 성사와 신앙생활에서 '배제'된 상황을 성찰하는 가운데 이들을 교회 공동체 안으로 통합하기를 원한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여전히 교회에서는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 생각하는지, 모성을 너무나도 강조하고 있다. 물론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간혹 등장하지만 쉼보르카 시에서 나오는 베트남 얘기가 나올 때도 그렇고, 엄마의 기도라는 수필도 그렇고 일상적으로 부모라는 단어보다는 엄마가 많이 나온다. 아 딱 한번 남편 대한 이야기는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신부인 교회와 남편 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도 신부는 결혼한 여자인 동시에 '창녀'이다. 이스라엘이 이 신 저 신 다 섬기기 때문이라는데, 이 때문에 호세아라는 예언자는 창부를 아내로 맞아서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에 대해서 나타냈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왜 호세아의 이야기가 인기를 끌지 않는지가 여기서 드러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창부를 사랑했다면 혹시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는 평생 의처증을 앓으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가 자신의 아이를 정말로 '자기 씨에서 나온' 아이로 보았겠는가? 처와 아이에게 잘해주었다 하더라도 예언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을 도구로서 두려 했다면, 그 의도는 불순하지 않은가?

 

 천주교는 굉장히 인간적인 면이 있다. 지금 생존해있는 크로아티아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면 대부분 조국을 팔아먹은 위선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과 같이 사목활동을 하지 않으려 벽을 치면서, 그들이 결혼에 한 번 실패했기 때문에 불순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향잡지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최근엔 하류층에서 결혼 자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동거하면서 사목활동을 계속할 자격도 없다는 말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아무 아량도 베풀지 않으면서 비난한다는 건 굉장히 치사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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