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그 첫번째
아키야마 미즈히토 지음, 김희정 옮김, 코마츠 에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지나면 다 추억이라고, 괴로운 일의 기억은 희미해져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곰곰이 되새겨보면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 아사바랑 나랑 좀 닮은 거 같애'라고 생각했는데,

아사바랑 이리야를 미행하기 위해 따라붙은 요원 남자도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어쩐지 닳고 닳아서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아사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 창창한 나인데 이러면 안 되는데 ㅠㅠ

 

 위기에서 도망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은 누구나 하는 법이다. 왜 하필 내가 이런 시련을 겪는 것일까. 잘못한 것도 별로 없는데 어째서, 더 잘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아사바도 별 잘못한 것은 없다. 단지 마을의 기지를 돌아다니다가 학교 수영장에서 수영을 좀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평범하지 않은 소녀를 발견했을 뿐이다. 손목에 뭔가 둥근 구체가 있고 코피를 쉴새없이 흘리는 등 신체는 허약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행동력은 센 소녀. 그녀의 돌직구에 아사바는 5cm미터쯤 떨어져서, 15도쯤 옆으로 돌아서 그녀를 곁눈질로 관찰한다. UFO에 빠져들었듯이, 그는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한 이리야에게 점점 빠져들다가 결국 그녀의 사연은 아무 상관도 없어지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공간에 대해서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리야에게서 편지를 받은 날 그는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볼일이 있는 것처럼 꾸며서 화장실로 도피, 몇 페이지에 걸쳐서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국 자신만의 공간인 시계탑에 가서 편지를 뜯는다. 그 과정에 대한 묘사가 너무 아름답고 풋풋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동심 때문이었을까. 아사바랑 이리야를 염탐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데이트를 지켜보면서 잠시동안 목적은 아무 상관도 없어졌다. 세카이계란 역시 이런 공간과 시간의 순간적인 정지성 때문에 보는 맛이 있는지도 모른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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