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명왕의 노래 ㅣ 겨레고전문학선집 이규보 작품집 5
이규보 지음, 김상훈 외 옮김 / 보리 / 2005년 6월
평점 :
추위
막는 목서화
명주
비단 훈훈한 향기에
방은 따스하기 봄철 같은데
임금은 오히려 차다고
추위 막는 목서화를 사랑하노니.
하건만 동지섣달
눈은 쌓여 석 자나
깊었으매
가난한 오막살이에는
얼어 죽는 사람이 어찌 없으랴.

MBC에서 나오는 무신을 보면 알겠지만,
그가 벼슬을 맡은 시기에 최충헌이 정권을 잡고 무신정치를 펴서
여러모로 문인들이 눈치밥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이규보는 그래도 비교적 제법 할말 많이 했고, 정부에서도 그를 인정해주었는데 이는
순전히 그의 문장실력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국가를 걱정하는 자신의 마음을 시로 충실히 담아냈다. 다소 혁명적인 이념을 가지고 정부를 비난하는 자들과 술을
주고받으면서도, 끝까지 중산층을 유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록 귀족 출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농민봉기를 끝까지 이해하진 못했지만,
나중에 그는 먹고 살기 어려운 농사꾼들에 대한 걱정을 읊는다. 그런 걸 보면 상당히 마음씨 좋은 아저씨임엔 틀림없다. 비록 현실에서 그의 정책은
실패했지만, 사람을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시문장에 그대로 묻어난다.
이는 그의 사상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고려 말의 대표적인 진보가로서, 불교정책을 상당히 싫어한다. 하지만 그의 나이가 노년에 접어들 때
쓴 시를 보면 중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그의 인식이 많이 너그러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옛말에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고 했던가. 그는
어찌보면 그 정신을 완벽하게 실천해내고 있다. 의외에도 그의 감수성은 자연에 대한 찬양에서도 드러난다. 이규보는 '만약 이런 자연을 만든 게
조물주라면 그는 어떤 모습일까'라고 말한다. 이념과 종교를 넘어서 세계를 창조한 누군가를 일컫는 건 지금 시대에서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런 자유로운 생각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성품에 있어서는 엄격하게 따진다. 예를 들어 거미줄을 뒤져서 매미만 풀어주는 그의 행위가 그렇다.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하도 물어보는 통에 그는 시에서 이유를 밝힌다. 줄을 쳐놓고 가만히 먹이가 걸리길 기다리는 거미의 '비열한' 행위가 얄미워서 그렇다고 한다.
목표나 과정보다는 성과를 따지는 요즘 사람들이라면 그를 얼마나 비웃을까.

이규보의 글귀를 보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이게 작품집 1권인데 2권도 조만간 읽어보려 한다.
김정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