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세계사 시인선 114
이응준 지음 / 세계사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꽃과 공룡

 

공룡의 멸망에는 꽃이 개입되어 있다는

학설이 있다.

종종 추운 나라에서 공룡들의 뼈가 발견되는 것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이 세계에 나타나

침엽수를 뜯어먹는 공룡들을

극으로

극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란다. 얼마나

 

우스운가. 꽃이 겁나 달아나는 공룡. 얼마나

놀라운가. 공룡의 거대한 꼬리를 뒤쫓는 꽃.

 

공룡들아. 오늘 나는 너희들이 두렵지 않다.

 

  

솔직히 이 시를 보고 마크로스의 젠트라디 족과 민메이의 관계가 생각났다.

프로토 컬쳐를 두려워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을 졸졸 쫓아다니며 되살아나는 민메이의 노래.

 

 이 시는 잊혀져가고 있는 사랑을 혹시 기억하고 있는지, 어느 사막에서 만난 여인에게 호소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시집이기에 스토리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으며, 테마가 순간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시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사랑이다. 굉장히 절망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그 와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자신의 심장 속에 깃들어있던 사랑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그 누군가의 싸움은 굉장히 처절하다. 이응준은 그것을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라 이름붙이고 있다.

 오랫동안 병을 앓아왔던 어머니와의 이별과 죽음에 대한 공포 또한 이 시의 슬픈 분위기에 한 몫한다. 하지만 죽음에 관한 원초적인 공포는 점차 무뎌지고 시들어가는 감정에 대한 공포로 이어진다. '눈에 고여있지만 떨어지지 않는 눈물'처럼, 그는 메마른 문체로 굉장히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그가 써왔던 소설들처럼 말이다. 굉장히 얇고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읽을 수 있는 시집이지만, 독자들은 이 책으로 이응준의 작품 속 세계를 단숨에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그나마 이응준의 작품 중 가장 희망적이다(...)

 

 

  

마치 최근의 내 이야기같은 시를 한 편 더 올려본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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