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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게이블즈 빨강머리 앤 4 (양장) - 약속 ㅣ 그린게이블즈 빨강머리 앤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계창훈 그림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4년 5월
평점 :
가끔
있는 시간. 즐거운 시간. 빠른 시간. 늦은 시간. 키스 뒤 30분의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태고의 시간. 이것은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의 하나야.- p. 130
1권부터 3권까지가 앤의 학교 적응기이자 연애담이라면,
4권은 앤의 사회 적응기이다.
실제 서머사이드라는 고장에서 교장선생님이 된 빨강머리 앤의 작가 몽고메리는 혹독한 고생을 겪었음이 분명하다. 일단 마을엔 유령마을이라는
그닥 훈훈하지 않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부유한 집이 많은 고장이 늘 그렇듯이) 서머사이드 학부모들의 텃세가 매우 강하게 표현된다. 게다가
단순한 텃세도 아니라 이지메에 가깝다. 원래 프링글 가문 중에 한 사람이 교장이 될 예정이었지만 앤이 교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교육을 부러
사교육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캐나다는 1950년대부터 공교육화가 시작되어서 앤같이 똑똑하지만 가난한 아가씨도 어느 학교의 교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캐나다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지만,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캐나다의 공교육을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하다.
심지어 학교 아이들마저 은근히 앤을 따돌리지만, 앤은 그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의 꼬여 있는 마음을 하나하나 풀어주려
노력한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한다고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도 있다. 하지만 작가 몽고메리는 그것이 앤의 노력이라거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꼬집는다. 앤은 심지어 서머사이드에서 멀리 떨어져 프랑스에서 사업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고아처럼 살고 있는 그의 딸아이를 데려가게
만든다. (거기에 몇 가지 우연도 작용하지만.) 이 소설에선 자신이 하고 있는 말과 전통에만 얽매인 나머지, 앤이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게
만드는 수다스런 아주머니들이 도저히 바뀔 수 없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과거에 일어난 불행을 곱씹으며 미래에 그런 일이 닥치는 걸
두려워한다. 아니, 두려워 한다기보단 오히려 그런 일이 일어나서 마을에 신선한 충격이 일어나기를 얼핏 바라는 것도 같다. 우리는 얼마나 과거에
매여있는가. 쓸데없는 걱정으로 미래를 날려버리고 삶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반성해야 한다! 아무튼 앤이 그곳에 너무 오래 눌러살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복잡한 서머사이드 고장을 벗어나 편안한 애번리와 길버트에게 돌아간다.
김정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