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실비아 플라스 지음, 박주영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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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마지막 로맨티시스트이다, 이들 양초는.
뒤집힌 채 밀랍 손가락 끝을 잘라내는 불빛의 깊숙한 중심과
그 자체의 후광에 놀란 손가락들, 
성인의 몸뚱이처럼 거의 투명하게 우윳빛으로 차츰 자라난.
감동적이지만, 그들이 무시할 방식이다.

- 양초 중 p. 304

 



실비아 플라스의 인생을 토대로 하여 나온 2000년도에 나온 영화 실비아.

언젠가 한 번 구해서 보고 싶은 영화이다.

여성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녀 인생의 어떤 점을 담았을지 궁금하다.

물론 영화의 끝은 파멸과 자살이겠지 ㅇㅇ


 자동차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가 매연을 일으키고 그 매연이 하늘의 오존층을 뚫어 날씨의 격변을 만들 것이라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의 인간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 견해를 무시했다. 상황을 언제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피해망상자들의 발언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고, 전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일어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심리학을 발명하고 피해망상 혹은 과대망상이라는 병명을 만들어 '예언자'라고 불리었던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 과대망상의 요소는 실비아의 초기 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하늘의 색을 바꿀 수 있다느니(초기 시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나타남.) 고등법원은 인간의 붉은 심장밖에 없다느니 하는 유령의 목소리와 그에 맞서 네 자신을 증명해보라는 신부의 추궁(유령과 신부의 대화.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는 '나는 내 자신을 스스로 증언할 필요도 없고 다른 인간들이 날 증언할 필요도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지시받은 대로 행동하고 내 행동이 나를 증언한다.'라고 말한다. 실비아 플라스는 시를 씀으로서 자기 자신을 증언하는가?), 이중인격에 대한 이야기(새벽 3시의 독백, 점판), 내 남편을 삼킨 권력자 무리들을 남김없이 잡아먹겠다는 이야기(때까치) 등등.

 외도한 남편과 별거해서 아이들 두 명을 데리고 사는 생활은 확실히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었을 것이다. 그녀의 후반 시는 욕설과 분노로 점철되어 있어서 사람들에게 좀 더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며, 특히 심리학을 전공한 남자들이 달려들만한 요소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시를 볼 때 중요시하게 여기는 감정의 컨트롤이 실비아 플라스의 후기 시에서는 많이 부족해보인다. ('겨울나무'라는 시 하나를 제외하고는.) 블랙유머는 냉정한 비웃음이다. 그녀의 후기 시는 분노의 시학을 만들 수 있었지만, 성숙미에선 많이 모자랐다. 실비아 플라스의 삶 맨 끝 부분에서 그녀가 조금씩 신화에 주목하기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자살하지 않고 그 혹독한 영국의 겨울을 버텼더라면 무언가 분노하고는 다른 방향의 성숙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그녀의 문학작품에서조차 테드 휴즈를 원망하느라 자신의 마음마저 좀먹어갔다. 사별은 암이라고 최근 영국의 작가가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배신에서 비롯된 이혼과 별거는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 나는 말 그대로 심장에 좀이 생겼다고 본다. 좀은 약을 쓰던 외과수술을 해서 직접 빼던 퇴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눈물을 먹고 피를 빨아들여 결국 심장을 멈추게 한다는 것도 모른 채,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망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망가뜨린다. 테드 휴즈는 둘째 아내도 자살로 잃고,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을 알리느라 그녀의 유품들을 다시 뒤져야 했다. 결국 그 자신도 '암'으로 사망했다. 그도 그녀의 저주가 가득한 시와 일기를 들여다보며 사별같은 아픔을 겪었던 것일까.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꼈을까. '그녀가 그 상황을 빨리 이겨낼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이 적절한 도움을 주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라고, 나처럼 그렇게 생각했을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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