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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 무라카미 류의 요리와 여자 이야기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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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이란 금지되어 있는 것에만 잠복되어 있다, 라는 당연한 말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 곳 요리를 먹으면 말일세."- 코르쥐다르의 밤은 요염하다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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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쓰는 형식을 봐서 생활상이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무라카미 류는 호텔과 레스토랑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그의 책에서 소개되는 음식들은 대게 다채로운 편이다. 이탈리아의 음식이라거나 어느 해외의 레스토랑에서나 먹을 수 있을 듯한 사치스런 음식들도 나오지만, 우리나라의 삼계탕이나 야구장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핫도그처럼 소박한 음식들도 많이 나온다. 진정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에게서 나올 법한 태도이지 않은가. 음식으로서 자신의 계급이나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은 무작정 고급스런 식당, 깔끔한 식당을 찾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 그리고 미식가들은 알고 있다. 아름다움은 그때그때 다르게 다가오며, 가격으로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잡소리가 길어졌다. 이 책은 옴니버스 식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음식과 여성을 관련시켜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서운 여자들, 혹은 그런 여자들에 의해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남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생굴이 되어버린 스튜어디스, 같은 제목도 등장한다. 위의 단어에서부터 벌써 엑스터시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지 않는가. 스튜어디스는 주인공과 섹스를 할 때 자신의 몸이 온통 생굴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보다 더 명쾌하고 노골적인 비유가 어디에 있을까. 아무튼 무라카미 류의 여타 소설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밝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의 치명적인 단점이 어둡고 딱딱한 분위기였는데 말이다.
본인이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은 이탈리아의 송아지갈비였다. 비유한 여자는 무려 안네 프랑크처럼 피폐한 마약중독 소녀. 송아지 갈비의 거칠거칠한 껍질을 먹어치우면, 안에는 녹은 치즈와 와인 향기를 풍기는 버섯이 있고, 피가 밴 고기가 있다고 한다. 거칠거칠한 피부와 무관한 소녀의 혀와 점막을 맛보며, 주인공은 행복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모두 다 한 시절의 추억일 뿐이고, 그 여자는 어쩌면 평범하게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식을 먹는 순간, 여자와 남자가 온기를 나누는 그 순간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 책은 그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