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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치팔 ㅣ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26
볼프람 폰 에셴바흐 지음, 허창운 옮김 / 한길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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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높은 두렁을 두들겨서 타작마당처럼 평평하게 만들었고, 칼을 휘둘러 열심히 고르게 빗질했다. 그래서 숲의 나무는 깡그리 다 베어졌고 수많은 기사들도 말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 p.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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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파르치팔이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퍼시발이라고 그러면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라고 인정한다. 원탁의 기사에서 어부왕을 고쳐주고 성석 혹은 성배를 차지하는 파르치팔의 이야기는 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끈다. 아서왕 이야기에서도 단연 독자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본인이 매우 숭배하는(?)가반 혹은 가웨인마저도 파르치팔과 비교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파르치팔의 특수한 환경에서 드러난 순수함은 따라하려고 해도 따라할 수 없는 경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건 마치 우리나라의 판소리 못지 않은 볼프람의 걸쭉한 풍자 때문이다. 익살스러운 기사들의 이름 열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묘사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소 딱딱한 아서왕 이야기에서는 보지 못했던 민속적인 재미를 체험할 수 있달까. 게다가 처음에 파르치팔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꽤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프람은 은근슬쩍 그를 비꼬아서 표현하기도 한다. (이후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그 묘한 비난을 ) 이야기를 하다가도 잠시 쉬면서 볼프람 본인의 생활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기사도를 좋아하는 독자분이라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고, 돈키호테의 다소 지나친 풍자에 지친 독자분이라면 이 소설의 은근한 풍자에 재미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위의 대사는 파르치팔의 아버지 가흐무렛 진영과 가스코네 진영의 치열한 싸움을 비유적으로 요약한 장면이라 한다. 말이 달리는 장면, 칼을 휘두르는 장면, 숲처럼 많은 창들이 부딪쳤다가 베어지는 장면, 기사들이 쓰러지는 장면이 상상되지 않는가! 700페이지의 두께가 만만치 않긴 한데, 묘사가 하도 재밌고 생생하다보니 종이가 술술 넘어가더라. '파르치팔' 책을 비판하는 비평가들이 너무 많아서 조금 걱정이었는데,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아서왕이라던가 성배에 대한 글을 읽으시는 중이라면 머리 식힐 겸 이 책도 읽어보시라. 특별히 별 다섯개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