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와 비밀의 부채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일단 소설을 다 읽었다는 말만 하겠다. 글을 소개하기보다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혼란스런 감정을 정리하는 게 우선인 듯하여 형식을 바꿔보겠다. 스포일러가 만빵으로 들어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그럼 이제부터 대놓고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글쎄... 내가 생각하기엔 설화가 너무 무리수를 던진 것 같다. 세 의형제와 같이 의형제를 맺었던 안 맺었던 간에 그녀는 나리의 잔소리에 지쳐 있었고, 다시 찬찬히 읽어보아도 그 편지엔 일종의 경고가 들어있었다. 소녀시절처럼 지내기를, 더 이상 나를 상처입히면 함께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메세지. 그녀는 나리와의 친구관계를 버텨내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둘은 여성으로서 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규정때문에 비밀의 부채에 누슈를 적어나가고,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관계가 깨지면 당연히 서로는 자주 만날 수밖에 없고, 서로에게 지칠 수밖에 없다. 물론 설화는 나리가 이해하기를 바라고 믿으며 그런 글을 썼겠지만.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무엇보다 놀란 것은 나리의 겉으로는 형식을 취했으나 실상 내용을 보면 험담과 비방으로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그 노래였을 것이다. 소중한 비에푸를 다른 친구에게 뺏기는 그 느낌은 확실히 여자들밖에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사실 고등학생 때 심하게 질투하는 편이었다 ㅋ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여성의 포근한 애정의 느낌이 아니었다. 단지 남성의 특성인 소유욕과 질투가 섬세하게 감춰진, 뒤틀려진 애정이었다. 
 본인이 이 소설을 레즈비언 혹은 퀴어소설이라 생각하지 않는 게 바로 이 점이었다. 나리가 설화를 남성적으로 사랑했다는 말에 혹시라고 생각한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리는 그저 귀족여성으로서의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 남성처럼 억척스럽고 모질게 변한 것 뿐이다. 가부장제 시대에서는 그런 여성들이 살아남는다. 아들처럼 똑같이 열 달 배 속에서 키운 딸에게 전족을 채워주는 어머니는 자신의 모성을 잠시 눌러야 한다. 우리나라라고 그런 여성들이 없겠는가? 기업체던 어디서든 남자들을 밑에서 부리려면 모성애를 꼭 옥죄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 남성들에게 그 괴로운 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