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 김열규 교수의 도깨비 읽기, 한국인 읽기
김열규 지음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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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본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물건은 '개구리소년 왕눈이'나 '두치와 뿌꾸', '은비까비' 따위가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변신물과 동네 뒷산의 판타지와 10명 이상의 다양한 등장인물을 갖추고 있는 '꼬비꼬비'였다. 둘리까지는 아니지만 스페셜 버전까지 방송되는 등 나름대로의 인기를 누렸으며 책까지 출판되고 있는 판이다. 주인공 소년(가운데)과 일명 도깨비왕자라 할 수 있는 검은 도깨비가 합체한 게 인간도깨비 '꼬비'이다. 그러니까 장르는 퓨전판타지인 셈이다. 그들 혹은 그가 합체해서 벌이는 영웅담이란 바로 개천에 폐수 쏟아붓는 공장 사장님 괴롭히기. 한마디로 인간의 파괴행위로부터 마을의 평화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예전부터 이 만화를 줄곧 찾고 있었는데 설마 이 책을 읽다가 무심코 그 제목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다음으로 도깨비라는 테마에 생각나는 건 노래이다. 전체가사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금 나와라와라 뚜욱딱, 금 나와라와라 뚜욱딱~"으로 끝나는 노래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왠지 돈냄새가 풀풀 풍기는 노래이다. 도깨비의 3대 욕망을 읽으면서, 혹은 '뚝딱'이라는 의성어를 읽으면서, 이 노래의 리듬을 떠올리곤 했다. 비록 8강 꿈은 좌절되었으나 우리나라 태극전사들이 원정가는 동안엔 꽤나 참여도 높았던 축구응원단도 머릿 속을 빙빙 맴돌았다. '붉은 악마' 마스코트의 모습은 변명할 구석이 없는 도깨비이다. 하필이면 좋은 일도 하는 도깨비를 두고 왜 서양분위기가 풍기는 '악마'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일 응원단의 이름이 '붉은 도깨비'였다면 이 정도로 인기를 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참으로 구수한 이름이 아닌가. 촛불시위 또한 우리나라 도깨비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시위처럼 총이 나가는 살벌한 전쟁판이 아닌, 노래와 춤으로 한바탕 흥을 돋우며 시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문화인이었다. '몽둥이' 든 전경들이 가득 모이는 밤이면 물바다와 피바다가 섞이는 난장판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말이다. 시민들이 든 촛불은 도깨비불마냥 이리저리 흔들리며 어둠 속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촛불 속에서 날밤새는 그들이 원하는 건 먹을 것에 대한 안전과 집시법에 저항할 자유이다. 그야말로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는 조선의 도깨비들이 아닌가. 

 이처럼 내가 알고 있던 도깨비의 모습도 여러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우리나라 속의 도깨비가 엄청난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돈과 권력과 여자를 마음대로 지닐 수 있는 도깨비를 은근히 부러워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소개하자면, 이 책은 엄연히 한국학에 대한 저서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위트와 무의식과 리비도와 일링크스 등 언뜻 보면 어려운 단어들이 나와있지만, 저자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쉽게 그 단어들을 도깨비의 특성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성에 관한 은유만 안다면 어린애도 이해할만큼 간단하다. 또한 오윤의 정겹고도 굵직굵직 힘차보이는 도깨비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낮도깨비 신명마당'이라는 명제 그대로 열정적이고 신명나는 그림들이었다. 도깨비의 설화를 이리저리 뒤섞어 재미있게 표현했기 때문에 심심풀이로 주르륵 펼쳐보기에도 아주 적합하다. 도깨비와는 연관없어 보이나 우리나라 최고의 꾀보 김삿갓의 시도 간혹 등장하곤 한다. 아마 도깨비가 한국 사람의 표본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생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한국학에 관한 저서라기보다는 구수한 옛날이야기 해설집같은 묘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한국학에 대한 저서를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이 책만큼이나 쉬운 책을 찾는다는 가정하에서.
 우리나라 사람들하면 보통 '한'의 정서를 떠올리는 외국인들이 많다. 그러나 고된 일과 속에서도 노동요를 부르며 낙으로 바꾸어버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볼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화가 부글댈 때 한 발 슬쩍 물러나, 울화 속에서도 말장난을 하는 한국인의 재치를 이해한다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구절이다. 한국에 관심있는 외국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속에서 살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해 무감해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널리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저 재치를 배우기를 바란다. 특히 '말로서 천냥 빛을 갚는' 저 말재치를.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남에게 장난도 잘 못치는 나로서는 도깨비의 기지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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