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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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직장을 갖지 않은 사람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직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중요하며 그것 없이는 근무를 할 수가 없는 의무ㅡ본부에 얼굴을 내민다는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페테르부르크로 나와 있었다. 그가 그 의무 수행을 위해서 거의 모든 돈을 긁어내다가 경마장과 별장에서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돌리는 되도록 생활비를 절약할 목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로 옮겨왔다. (...) 버터와 우유는 아이들 몫도 모자랐다. 달걀은 없었다. 암탉도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보랏빛의 힘줄이 많은 늙은 수탉이 구워지기도 하고 삶아지기도 했다.


  

 

가정교사와 남편이 불륜을 일으켰다고 그녀가 질투를 하니까 집에서 내보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ㅠㅠ

 

 

주로 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남자와 가정주부인 여자의 일상을 구분하곤 하던데, 남자는 항상 극한적인 상황에 몰린 케이스고 여자는 부유한 집에서 산다. 어떻게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래된 고전, 특히 톨스토이란 남자가 쓴 이 책에선 같이 결혼해 사는 남녀가 그려져 있는데도 여자가 훨씬 더 불행하다.

이래서 고전을 본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이름과 사건이 낯설어도 그 속엔 지성이 있고, 그것이 현대에서 여러 갈래의 책들로 나뉘어져 지금도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의 책들은 친절하지만, 대부분은 작가의 생각이 너무 들어가 있거나 혹은 곡해되기도 한다. 고전을 보면 직접 사고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보라색이 작품에 자주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는데, 키티가 안나와 만났을 때 보라색 옷이 이쁘다 했는데 안나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야회에 나갔기 때문이다. 그 옷은 브론스키를 낚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에게 청혼할 기회를 뺏긴 키티는 안나를 의식해 그녀처럼 되고 싶어서 연보라색 옷을 입고 레빈의 청혼을 수락했다. 의외로 보라색이 이 작품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레빈과 키티의 결혼을 주관하는 사제가 보라색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이 '왜 죽은 시체처럼 보이는 빛깔의 옷을 입느냐'고 불평했던 일도 있었고.

번역하시는 분의 사적 감정이 들어가 있는 해설도 눈길을 끈다 ㅋㅋ

카레닌이 안나의 서랍을 강제로 뒤져 그녀에게로 온 우편물을 빼앗는 장면도 나오는데, 해설에 의하면 당시엔 남편이 아내나 종에게 온 우편물에 대해서도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모두 읽어볼 권한이 있었다고 한다. 저기 가면 아내가 멋대로 게임기를 팔았다고 불평하던 어느 남편도 게임기를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 마더 로씨아! 남편은 타임머신 타고 톨스토이 살던 과거의 러시아로 가면 되겠네 ㅋ 하긴 남녀차별이 심화되었던 조선 말기가 더 남자들 살기 좋았으려나?

P.S 얼간망둥이라는 욕이 등장한다. 다른 국적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똑같은 단어가 등장하는 걸 보면 욕설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쓰지 않았다는 걸로 해석된다. 이 출판사가 유독 그런 욕으로 순화시켜 쓰는 걸 좋아하는지?

한 아낙네가 덜렁대는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뽑아 후렴구까지 부르고 나자, 이번에는 곧이어 굵직한 목소리며 가느다란 목소리 그리고 기운찬 목소리 등 쉰 남짓의 갖가지 목소리들이 한결같은 노래를 처음부터 되풀이했다.


  

 

1권처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음악적 요소가 곳곳에 등장한다. 이거 정말 뮤지컬 노리고 쓴 게 아닐지. TV에 KT를 연계하니 영화를 사서 볼 수 있는 게 뜨던데, 기회가 있으면 찾아내서 도전해볼까 한다.

 그러자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말할 것까지도 없지만, 아름다운 헬레네 때문에 최근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되살아난 메넬라오스를 위시하여 현대 상류사회에서 남편에 대해 부정했던 아내의 실례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머릿속에 쭉 떠올랐다. '다리얄로프, 폴타프스키, 카리바노프 공작, 파스쿠딘 백작, 드람...... 그렇다. 드람도...... 그처럼 성실하고 유능한 인물조차 그런 일을 당했다...... 세묘노프, 챠긴, 시고닌' 하고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생각했다. '설령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 어떤 불합리한 조소가 던져졌을지언정 난 결코 그들에게서 불운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그들을 동정해왔다.' 이렇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스스로에게 말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이런 종류의 불행에 동정하지 않았고, 남편을 배반한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자기의 값어치는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한남들이 그렇게 여혐을 하면서도 지네들끼리 뭉치지 못하는 이유를 정말 명확히 제시하는 듯해서 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봤다.

그나저나 밖에서는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 집에서 문 닫으면 지 아내랑 자식을 팬다. 나도 아버지가 주먹으로 날 때려서 피멍이 들었는데도 사람들이 여태 내가 거짓말한 줄 안다. 덕분에 성당 가고 싶은데 이상한 소문 퍼져서 못 가고 아버지는 잘 다니심.

약간 스포를 하자면 안나의 남편은 안나의 힘겨운 출산을 보고 충격을 먹어 잠시 새 사람으로 돌아올 각오를 하지만 결국 얀데레에게 빠져(응?) 요상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남 어차피 오래가지 못한다는 톨스토이의 코웃음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아, 그렇군, 그 속에 재미있는 논문이 있어." 스비야쥐스키는 레빈이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보고 말했다. "결국은 그거야" 하고 그는 유쾌하고 발랄한 어조로 덧붙였다. "폴란드 분할의 주요 책임자는 결코 프리드리히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그리고 그는 특유의 명쾌한 어조로 간단하게 이 새롭고도 몹시 중대한 흥미로운 발견해 대해 얘기했다. 지금 레빈은 농사에 대한 생각에 무엇보다도 많이 마음을 뺏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이렇게 자문했다. '도대체 이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이 사내는 폴란드의 분할이니 하는 문제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스비야쥐스키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레빈은 무심코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노빠꾸 레빈 ㅋ 근데 어떤 페친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윌리엄 포크너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지 고향 얘기만 나와서 재미없어서 덮었다나. 근데 이건 약간 이세계 덕후랑 비슷해서, 무조건 지 일과 먼 얘기를 봐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런 심정인 것 같다. 이건 정말 모르는 사람은 이해가 안 간다 하더라. 현실도피와는 좀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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