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2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총서 2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엮음 / 동인(이성모)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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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우리가 '보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이며 편파적인지를 지적하면서 이어지는 세 점의 그림(장면)을 보여준다. "선원의 귀환," "한밤의 외침," 그리고 "묘지"로 이어지는 세 개의 장면은 그 자체로는 연관성이 없는 개별적인 것이지만 작가는 그 장면들이 모여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마지막 부분에서 작은 단서를 제시하여 보여준다.

 

 

울 어머니가 사피엔스를 최근 다 읽으셨다고 해서 그거보다 백배는 더 재미있다고 이 책 추천했는데 딱 이 부분 전에 줄치고 완전 새 책이 되었음 ㅠㅠ 어머니가 보수라 나 빼고 페미들 몽땅 다 싫어하는 건 알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엉엉 사람들아 페미책 재밌어요 왜 안 읽어요 징징. 그나저나 아무리 내가 대학시절 유일하게 자퇴 안 하고 버틸 수 있었던 계기인데다 초 선망하는 교수가 이 책 필자단 중 한 명이라 해도.. 철학자들 졀라 많이 나오고 두껍고 글씨 큰데도 의외로 읽기 어려워서 페미뽕 정말 부족하면 2권 마저 읽어야지 생각하고 덮은 책인데 지금이 그 기회인 듯하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이런 책보다 읽기 힘든 게 반페미 서적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가 하도 나와서 대체 출처가 어딘가 일일히 검색해봐야 한다. 그런데 죄다 너튜브라는 점 ㅡㅡ 너튜브는 또 반페미 서적을 참조한다면서 입을 씨부리고 말이다. 이게 그 복고냐? 돌고 도는 트롯트야? 요새 젊은 애들이 불러도 촌스러운 건 촌스럽더만.

 

사실 버지니아 울프만큼 오해를 받는 인물이 없다. 최근 자기만의 방에 '여성이 자기 권리를 가지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쓰여있다 착각하는 무식한 자를 본 적 있다. 일단 말하는 인간은 남자같은데 그런 식으로 여성 소설가를 깔보듯이 얘기하는 짤을 올리는 건 여혐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 안 읽은 모양인데 그 책은 '여성이 차별받지 않으려면 경제력 있어야 한다'로 끝낸 게 아님. 정확히 풀자면 버지니아 울프는 '지적으로 무지한 여성이라는 게 편견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여성들이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음. 그리고 그녀들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게 생존 가능할 만큼의 돈과 편하게 글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임. 그런 책소개를 나한테 캡쳐해서 보여준 놈도 미친 놈이지만 그 소개글 쓴 인간에게 이 리뷰에서 전한다. 제발 좀 책을 읽고 지껄여라 응? 알겠니? 읽지도 않도 네이버 지식인 검색해서 대충 씨부려대다가 이렇게 인터넷 사방팔방에 니 무식이 퍼지는 거란다. 이것도 감지덕지인 줄 알어 내가 버지니아 울프였으면 너네 둘 소송걸었다.

 

 

디 아워스는 여러 형태의 동성애 구조가 그려져 있다. (...) 여기서 끌어낼 수 있는 또 한 가지 측면은 영화가 갖고 있는 대중매체라는 속성을 감독인 달드리가 매우 유연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동성애자의 관계는 도식화 내지 약화시켜 그 관계 자체를 표면화시키지 않으면서도, 남성간의 동성애는 그것을 인간 조건의 한 단면으로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묘사해 동성애 자체에 대한 비난이나 논란을 정략적으로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양성애자인 달드리 자신의 "한 번 뿐인 삶에서 오직 한 종류의 사람으로 운명 지워 진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는 말은 그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한다.

 

 

 

상당히 잘 만든 영화인데 매니악하긴 하다. 최소한 댈러웨이 부인, 시간들에 이어 버지니아 울프의 삶까지(그에 대해선 도서출판 동인에서 나온 버지니아 울프 1을 추천한다.) 알고 있어야 한다 ㅋ 개인적으로는 커닝햄의 시간들 소설까지는 스킵해도 좋다고 보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정신없이 뒤바뀌는 전개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기도?

 

자아와 타자의 경계이며 자아와 타자가 접촉하는 최전선을 이루는 의복은 이렇게 그것을 입은 사람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울프는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옷에 대한 첨예한 인식은 블룸즈베리 구성원들의 팬시드레스 파티에서 누드에 이르기까지 파격적인 행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 극단적인 예로 "드레드넛 혹스" 사건을 들 수 있다.

1910년 2월 7일 버지니아 울프와 아드리안 스티븐, 호레이스 코울, 안토니 벅스턴, 던컨 그란트 등 몇몇 블룸베리즈 젊은이들이 템즈 강에 정박 중이던 당시 대영제국 해군력의 상징이었던 드레드넛 함을 상대로 장난을 친 사건이었다. (...) 무대 분장사의 도움을 받아 아프리카 왕족과 외교사절단으로 분장힌 이들은 의심받지 않고 국빈대접을 받으며 영국군의 극비사항인 배 내부를 시찰하고 돌아간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

 

 

 

이 장난꾸러기들 ㅋㅋ 울프는 이래놓고 자기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다니.

 

1920년대 모더니즘 문학이 공장에서의 대량생산과 대규모 쇼핑몰을 필두로 하는 대량소비가 자리 잡게 되는 시기에 도래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 시기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 내적인 변화 외에도 패션이나 영화, 자동차, 비행기, 라디오와 같은 새로운 등장한 문화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마침 1910~1920년대 스타일을 꽤 좋아하는지라 ㅎ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축구와 스포츠는 '중요한' 반면, 패션을 숭상하고 옷을 구매하는 것은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를 비판한다.

 

 

 

내가 패션고자라서 그렇지 이건 정말 인정함. 그리고 '아무거나 몸만 가리게 걸치면 되지'라고 얘기하는 것들 사실 고상한 체 하지만 99.9%는 패션고자임 왜냐면 그게 나거든 ㅠㅠ

 

라뎅의 지적처럼 세월에서 안티고네 신화의 잦은 언급은 감정과 개인 관계에 근거한 여성적 윤리 체계와 외적 사회 코드에 대한 남성적 힘의 원리와 순응 사이의 대항을 위한 신화적 유사성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라스웨이드부인으로 가장 화려한 삶을 산 키티조차도 그녀의 지난 날 들은 "괴롭고, 역겹고, 잔인한 세월들"로, 과거나 추억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원하며, 북부에서 정원을 가꾸고 발레를 관람하며 혼자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현재 삶을 즐거워한다. "젊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제 우리는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실제로 나이가 들어보니 죽고 싶단 생각은 덜 듭디다.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줄어들어서 그렇지. 근데 젊은 여자만 찾는 직장은 사실 다 이유가 있어요 ㅎ.... 그런 점에선 나이든 게 훨씬 나아요.

 

영화에 대한 사회전반의 관심은 1920~30년대 데일리 메일, 베너티 페어, 아델피, 보그 등 인기 잡지들을 통한 열띤 영화논쟁으로 이어졌고 유럽 전역에서 피카소, 조이스 등 아방가르드 예술가 작가들의 참여도 눈에 띤다. 특히 1920년대에는 초현실주의적, 다다이즘적 영상들을 통해 꿈이나 부조리 등을 담아내며 시간성을 전복시키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예술영화들은 기존의 소설이 제공하는 서사구조를 전복시켜 프로이트의 꿈의 세계처럼 논리성과 시간성을 벗어나는 부조리함을 추구하기도 했다.

 

 

 

굉장히 뜻밖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영화를 봤다니 ㅎㅎ 내가 은근 이 분을 옛날 사람으로 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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