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목욕탕과 술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지식여행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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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오른편에 목적지 '가노'가 나타난다.

여기도 오래된 술집인데, 최근에 한참이나 영업을 쉬고 건물 전체를 완전히 리뉴얼했다. 사실 오늘이 리뉴얼하고 처음 오는 셈인데, 은근히 두근거린다.

노렌을 걷고 안으로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 안에 선 주인 부부.

순간, 오른편에 있던 카운터가 왼쪽으로 옮겨지고 그 자리에 있던 4인 테이블 두 개가 오른쪽으로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의표를 찌르는 새로운 배치.

안쪽에 있던 앉는 자리는 없어졌다. 거기서 나베를 두고 앉은 적이 있었다. 약간 섭섭.

 

아니 왜 내가 좋아하는 가장자리를 없애버리죠 ㅠㅠ 이건 참 단골들에게는 아쉬운데. 그 다음으로 가게 리뉴얼할때 메뉴가 바뀌어서 내가 옛날에 시켰던 그 요리가 없어졌을 때 되게 아쉬움. 주먹밥이라던가.

요샌 정말 공무원 아니면 일하다 그만두면서 잠시 노는 공백기가 발생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이 책은 그런 때 낮술하면서 보면 딱 좋다. 이 책이 생각보다 낮술을 그렇게 강조하는 편은 아니다. 목욕탕에서 나온 직후 술을 마시려 하다보니 낮술이 되어버렸다는 설정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나처럼 일부러 낮술을 고집하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나같은 경우 메밀국수 집은 아니지만 분식집인데 생맥주를 파는 데가 있더라. 배가 터지도록 마시니 알바와 주방 아주머니가 한참동안 절 쳐다보시던 ㅋ.. 하기사 책을 읽고 있기도 했고.

아니면 밤에 찜질방에 가서 샤워한 후에 맥주캔을 옆에 놓고 보는 것도 좋겠다. 금방 읽을 수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뚝딱 읽고 나올 수도 있다. 작가의 본직이 만화가라서(책 표지에서 나왔다시피, 이 분의 대표작으론 고독한 미식가가 있다.) 그런지 시각적인 묘사가 꽤 꼼꼼한 편이라, 사실 나같이 해외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책으로 온천여행을 다 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같은 경우 저자와 여행에 대한 취향이 잘 맞는 사람이라 더더욱 읽기 편했다.

 

P.S 이 책을 들고 읽으면서 지나가는데 여자 두 명이 표지가 더럽다고 웃더라. 중년 남자가 남탕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난 코로나 19가 창궐한 이 시국에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침튀기며 웃고 있는 그 여자 둘이 더 더러워 보였다. 가까이 있음 전염될 것 같고 상식도 없어 보여서 말 섞기 싫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때 길거리에 나갈 때 마스크 안 쓴 인간은 다 벌금 내게 하거나 징역 살게 했음 좋겠다. 아무튼 밖에서 이 책을 읽을 땐 표지 조심.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기껏해야 만화가인걸! 딴따라인걸!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뭐, 돈까지 벌려고 하는 건 비겁하지. 이런 일로 돈을 벌게 될 때는 그 시절의 우연이 겹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마실 때만큼은 일도 피로도 잊고 마음을 푹 내려놓고 싶어서 술집으로 들어선다.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과잉 서비스, 넘치는 맛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전 세계 만화가들이 다 뒤집어지는 소리인데 맞긴 한가보다 ㅋㅋ 이전에 만화가 페친 분도 그러셨다. 만화가가 되는 방법은 실력과 운이라고.

 

이 섬 로커 위에 누군가가 두고 간 듯한 DVD가 놓여 있다. 궁금해서 다가가니 가슴을 크게 연 파란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자 사진이 있고, 그 위에 보라색으로 인쇄된 글자가 보인다.

 

나, 느끼고 말았어요.

 

이건 성인용 영상물 아닌가. 말할 것도 없다. '전업주부 컬렉션 4시간', 이게 서브 타이틀이다.

 

아니 왜 목욕탕에서까지 DVD를 들고 다니는데 게다가 성인용; 남자가 남자 알몸을 엿보는 것도 그렇긴 하지만 일본은 왜 이리 변태 천국이야?

돼지볼살소금구이도 맛있었다. 꽉 씹으면 탄력이 있고 육즙이 촤악 입안으로 퍼진다. 이어서 벌컥 들이키는 맥주가 그 맛을 한층 더한다.

(...) 맛있는 걸 먹다보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대화가 자연스러워진다. 테니스 동료하고도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웃었다. 

 

술은 서로 주정의 형태가 다르니 어떨진 몰라도 확실히 무언갈 같이 먹으며 대화하는 건 상대방과 친해질 수 있는 지름길같다. 입 안에 있는 걸 상대방 얼굴에 뿜지만 않는다면야.

 

애써 목욕을 했는데 다시 먼지 속을 걸어가야 하다니.

그렇지만 오늘은 일부러 인파를 뚫고 벤텐탕으로 향했다.

이곳은 2005년부터 '목욕탕 록 페스티벌'이란 이벤트를 기획하는 걸로 유명하다.

말 그대로 목욕탕 안에서 록 콘서트를 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중도 뮤지션도 모두 홀딱 벗은 채인 건 아니다.

여탕 욕조에 뚜껑을 덮고 그곳을 스테이지 삼아 라이브 공연을 한다. 목욕탕 특유의 자연 에코도 살리는(좀 억지스럽지만) 독특한 기획이다.

역시 젊은이의 거리, 음악의 거리, 기치조지답다.

 

 

억 이거 막부말 Rock에서 나왔던 얘기 아니냐 나는 이거 기획한 애들이 주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ㅠ 리뷰에다가 괴랄한 생각을 한다고 써서 미안해 얘들아 ㅠㅠ 난 남성 팬 공략하려는 줄 알고;

내부는 쇼와시대의 모든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은 탓인지 그리운 옛날 냄새와 함께 폭삭 낡았다.

(...) 텔레비전, 없다.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타임슬립을 한 듯한 이 그리운 정경. 

 

 

간혹 이런 일본의 전통지키기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던데 청소 잘 하고 관광같은 걸로 활용만 잘 하면 되지 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다고 난린지 잘 모르겠다. 옛날 물건이라고 마구 버리면 나중엔 사람도 옛날 꺼라고 버리게 되겠지.

 

차가운 생맥주는 한순간 여기가 어딘지 잊어버리게 할 만큼 맛있었다.

이 가게를 시작한 지 벌써 3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미야기 현 출신으로 야마가타에 시집을 갔는데, 셋째 아들이었던 남편과 아기를 데리고 도쿄로 나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회사에 다니다가 이윽고 이 가게를 냈다고.

"그때는 밥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고 해서 꽤 바빴다우."

아득한 눈길로 그런 말을 한다.

(...) 세 번의 반복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고생'이란 말로는 정리할 수 없는 어떤 드라마가 있었으리라.

 

내 생애를 점철해보면 흑역사와 뻘짓으로 코믹엽기 대하 드라마가 나오겠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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