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꿀 권리 - 모네 샤갈 세갈 바로키에 칠리다 코르티 마르쿠시스 플로콩을 통해 펼쳐나가는 몽상의 미술론, 개정판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이가림 옮김 / 열화당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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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다 앞에서 술병을 들고 있는 나는 어제 했던 이야기를 지금 또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명상은 변덕스런 것이며 변덕 그 자체이기도 하다. 더구나 궁극적으로 명상의 우발성을 최대한으로 북돋우는 것은 다름 아닌 가장 강력한 작품인 것이다. 가장 개성적인 작품은 개성적인 해석을 자아낸다.

 

 

페친하고 전에 얘기했는데, 나는 지젝이 사회학자라 생각하지 철학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자의 글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유명한 분들의 글들은 몇 개 훑어보았다. 그들의 글은 에세이같으면서도 소설 같고 시 같고 결국 모든 장르를 합친 듯한 그런 웅장함이 있다.

 

명화와 그에 대한 설명이 쭉 이어지니 핸드폰을 앞에 두고 그림을 검색해가며 보시길 바란다. 책 자체가 전반적으로 표현력 맛집이라 할 만큼 맛깔난 설명이 펼쳐지는데, 첫 구절부터 굉장히 느낌이 좋다. 다양한 사람들의 책을 읽다보니, 이 사람이 필살기에 해당하는 문장을 첫 구절에 넣는 걸 좋아하는지, 혹은 마지막 구절에 넣는 걸 좋아하는지 보일 때가 있다. 아무래도 가스통 바슐라르는 첫 구절에 넣는 걸 좋아하는 듯하다.

처녀라던가 젖가슴 같은 얘기가 나와서 아.. 이 인간도 결국 철학자들 사이에서 흔하다는 그 꼰대 한남같은 타입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이 글 이후에는 그런 표현이 적다. 그렇지만 여성적이다라던가 그런 비슷한 글귀가 있으니 읽으실 때 이런 데 민감하신 분은 빡침주의 바란다. (그러나 그런 구절은 매우 적다.) 그래도 아까 얘기했듯이 첫 글귀가 워낙 인상적이라 안 읽고 지나갈 수는 없다 쩝.

 

책에 굳이 단점이 있다면 내용이 아니라 책 자체를 꼽을 수 있겠다. 디자인은 좋은데, 표지의 푸른색이 번져서 손은 물론이고 온 사방에 물든다. 내가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사서 그런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책을 집어들 때 조심해야 한다. 또한 가급적이면 읽은 부위를 표시할 땐 따로 책갈피를 구매해서 끼우는 걸 추천한다. 책날개를 사용하면 안 된단 소리다.

 

이 책에 소개된 화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은 칠리다였다. 조각품으로서 다루기에 가장 단단한 대상을 찾다가 결국 철제까지 도달하셨다는데,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설치하면서 참 힘드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불호가 좀 많이 갈릴 듯한데, 되려 그래서 나에겐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생기 넘치는 눈을 지닌 모르드개가 머뭇거리는 여자에게 이렇게 간청한다. "가서 왕권을 받아라. 그러면 너는 너의 백성을 구하게 되리라." 에스더는 머뭇거리면서 아주 창백하게 질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다. 마침내 그녀는 여성적 영웅주의로 지고한 행위를 실천해 나간다. 그녀는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기어 올라가는 것같이, 왕좌로의 계단을 올라간다. 이러한 드라마를 바탕으로 하여 라신은 한 편의 비극을 썼다. 샤갈은 같은 비극을 석 장의 그림으로 응축시켰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년에 종교에 귀화했다더니 사실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런 글에서 살짝 티가 나긴 하는 것 같다. 이래서 서양 책을 접하기 전에 성경을 접하는 게 필요한 것이다. 성당이나 교회를 다니면 더 좋고.

기타의 노래 소리는 옛날의 혼의 메아리이며, 옛 사랑의 조금은 즐거운 애가이다. 이 울려퍼지는 몽상에 마음이 이끌린 남자는 연약한 팽이처럼 외다리로 서서 몸을 돌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큰 몸집의 줄무늬가 그어져 있는 그리자이유 아래쪽의 흑과 백의 충돌은 내게는 너무 격렬하게 보여, 순간적인 원무를 이끄는 동작보다도 더 큰 운동처럼 보일 정도다. 그들은 일곱 명의 무용수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이 있는 한구석에는 북적거리는 결혼식의 연회가 한창이어서 신세대의 기쁨이 열광의 때를 맞은 것처럼 보인다.

 

 

책 두께는 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만치 않다. 플로콩의 판화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중편소설 수준으로 길다. 읽으려면 어느 정도 체력을 갖추어야 한다. 사실 거의 모든 철학책들이 그렇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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