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메리 비어드 선집 2
메리 비어드 지음, 오수원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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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로마 초기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를 보면, 덕성 높은 루크레티아는 당시 왕가의 잔혹한 왕자에게 강간을 당한 다음 발언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 발언 기회는 강간을 저지른 자를 비난한 다음 자살하겠다는 선언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최소한 로마 시대 저자들은 그렇게 기술했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쓰디쓴 발언 기회조차 박탈이 가능했다.

 

 

이 성폭력 사건이 고결한 여성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그림 소재로 굉장히 많이 쓰였었다. 물론 실제로는 더 비참했다. 리비우스 로마사에 나오는 내용인데, 계속 반항하면 루크레티아와 남성 노예를 함께 살해한 뒤 간통했다는 누명을 씌우겠다고 가해자가 협박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말에 굉장히 공감하는 바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큰 목소리로 잘 운다고 가족들에게 면박을 받았다. 내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남자 친척이 했던 행위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다른 친척과 내 남동생이 있는 앞에서 나를 왕따시키고, 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음 고질라가 피아노를 친다고 놀렸다. 내 울음소리를 고질라의 포효에 비유한 것이다. 나중에 크고 나서 여러 여성들의 말을 듣고, 나 같은 일을 겪은 여성들이 한둘이 아닌 점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남자아이가 크게 울면? 허허 장군감이네~

 

특히 서브컬쳐는 여성의 발언에 대한 무시가 심한 동네다. 일단 그 집단에 있는 모두들 내가 여성이라는 걸 알면 내가 가진 정보는 맞든 틀리든 일단 의심을 받는다. 분명 썸녀 혹은 심하게 얘기하자면 섹스프렌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부녀자란 이미지가 딱 여성한테 좋다고 할까? 아무튼 조금만 작품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하면, 여왕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실제로 들어본 말이다. 서브컬쳐계의 여성들은 대부분 여성으로서 남성들의 관심을 받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작품에 대한 감흥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원할 것이다. 특히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을 말이다.

 

Black lives matter이란 단어를 여성이 만들었다는 사실도 신선했다. 저자도 책을 쓰면서도 지금 이 단어가 다시 사회 전면에 등장할 줄 알고 있었을까? 궁금한 사람들은 꼭 책을 구매해서 보시길 바란다. 얇아서 금방 읽는 게 가능하다. 물론 그 단어를 만든 용감한 세 여성의 모습도 컬러 사진으로 실려 있다.

 

발언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염색 안 한 긴 백발을 풀어헤친 채 자유분방한 히피 스타일의 옷차림으로 등장하는 이 인상 좋은 할머니(요즘처럼 '예순은 청춘이다'를 외치는 시대에 예순세 살의 여성을 할머니라고 불러도 된다면)는, "TV에 등장하는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차림새를 하고 있다"는 어느 남성 언론인의 독설에는 "여성이 발언할 때 그 내용이나 외모나 보는 이에게는 별로 할 말이 없다"며 가볍게 대꾸하고, "맨날 똑같은 옷만 입고 나온다"는 조롱에는 "뭐, 난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날이 밝았네! 오늘을 무슨 옷을 입을까!'라고 말하는 부류가 아니니 어쩔 수 없지"라며 가뿐히 응수한다.

 

 

저자가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 발언은 좀 시원하다. 여자는 꾸며야 한다고 10분 전에 출근하라는 회사들에게 이런 말 좀 했으면 좋겠다고 전부터 생각했는데.

 

펀치에 실렸던 한 만화는 여성의 발언을 듣고도 못 듣는 척하는 무심함을 탁월하게 풍자해냈다. '그것 참 좋은 제안이군요, 트릭스 양. 분명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도 같은 주장을 하고 싶겠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군대에 관한 얘기를 볼 수 있다. 여성이 군대에 관한 인상 이상의 얘기만 꺼내도 '다녀오셨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군대 가서 남자처럼 구르지 않았으면 입 닥치란 얘기다. 그러나 이젠 누구든지 알겠지만, 직업 군인을 선택한 여성들조차 업신여김을 받는 경우가 다수이다. 비혼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군대를 가라며 강요하는 남성들의 대부분은 그저 성노리개를 원할 뿐인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있다. 그들에게 여자 화장실 등 지극히 기본적인 의식주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발언은 그저 건방질 뿐 아닐까.

이러면서 여성들이 당하는 강간에 관한 불안감은 아는 척 하는 한남 ㅅㄲ들 진짜 자르고 싶음.(응?)

인터넷상에서 나를 생식기에 빗댄 불쾌한 언사들(비어드의 얼굴에 여성 성기 사진을 겹쳐놓은 합성 이미지들이 인터넷에 떠돈 사건)이 의견이랍시고 한바탕 펼쳐진 것을 본 후, 나는 '입을 쳐 맞은 느낌이라는 트위터 답변을 날렸다. 그러자 영국 주류 잡지의 한 평자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렸다. '여성혐오는 실로 "입을 쳐 맞은 느낌"을 준다고 메리 비어드가 징징거렸다'라고 말이다.(지금까지 구글 검색을 통해 대강 훑어본 바로는 '징징거린다'는 조롱을 여성들만큼 듣는 영국 내 유일한 집단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연패에 시달리는 인기 없는 축구팀 감독들뿐이다.)

 

 

안타깝다 영국에도 소추라거나 고추절단기같은 단어가 있었으면 대항할 수 있었을 텐데 ㅠㅠ

2017년 초 타임스의 1면 기사 제목은 이런 통념을 기막히게 포착해냈다. 여성들이 머지않아 런던 경찰청장과 BBC 이사장과 런던 주교 자리를 얻을 가능성을 보도하는 기사 상단에는 '여성들, 교회와 경찰과 BBC의 권력을 낚아챌 채비'라고 쓰여 있었다.(이러한 예측이 현실이 된 유일한 사례는 크레시다 딕이 런던 경찰청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난 진짜 꼰대남들 개이상한게 아니 지네들이 학창시절(한국은 군대시절) 존내 공부 안 한 걸 가지고 왜 여성들이 취업자릴 뺏는다 생각하는지? 여성은 취업할 엄두도 못 내는 자리 아직도 많아 거기라도 가던가 ㅋㅋ 그나마도 열심히 일 안 하고 회사 내 여자들 욕하고 있음 그 여자들에게 자리 뺏긴?다? (아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만일 저기서 나오는 교회가 성공회라면 이미 여성 런던 주교 탄생.)

그저 15세기의 환경으로 연극을 옮겨놓기만 해도 리시스트라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드러낸다. 첫째, 아테네의 관습에 따르면 원래 이 극을 공연하는 배우나 관람하는 관객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에, 극에 등장하는 여성은 분명 남자 배우가 무언극의 여주인공처럼 몸짓으로 연기했을 것이다. 둘째, 연극의 대단원에 이르면 여성이 권력을 행사한다는 판타지는 가차 없이 짓밟힌다. 이 또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실이다. 마지막 장에 나타나는 평화란 나체의 여자(혹은 나체의 여자로 변장한 남자)를 무대로 끌어내는 것이다. 

 

 

이것도 일본의 서브컬쳐들이 아직 진화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1. 여성 성우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긴 하지만, 아직 연약한 남성 아역 캐릭터도 같이 연기하곤 한다. 남자 성우를 쓰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드물다고 본다. 전적으로 여성을 연약하게 본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음.

2. 무사 쥬베이나 3X3 아이즈를 보면 알겠지만 여성은 요괴라는 비정상적 형태로 세계를 다스릴 권한을 잠깐이나마 잡는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남성 주인공의 무력에 의해 무너진다.

3. 항상 애니메이션 마지막에 벌거벗은 채 등장하는 여자와 이를 받아주는 벌거숭이 남자(...) 둘 다 벗었다고 남녀평등이냐?

트위터상의 폭풍 같은 비하와 욕설은 다른 모든 혐오 발언과 대동소이한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관점이 가끔씩 등장하며, 최소한 비교해볼 만한 흥미로운 사례들이 없지는 않다. 나는 2017년 여름 영국의 총선 당시와 그 직후에 이루어진 두 건의 처참한 라디오 인터뷰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노동당 의원인 다이앤 애벗과 보수 정당인 토리당의 보리스 존슨이었다. (...) 정작 나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이 얼간이 같은 두 인터뷰를 대하는 온라인 및 다른 논의 공간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사실이다. (...) 이러한 폭언들을 그나마 점잖은 언어로 정리해보자면, 애벗은 '자기 직무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존슨 또한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방식은 애벗에 대한 비판과 딴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독 비판을 많이 받는 심상찮은 여성 의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여자라고 해서 만만하게 보는 의식이 무의식중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놓고 여성이라고 년이란 단어부터 꺼내는 인간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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