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받으소서 -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옮김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BCK)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인 달과 별들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하늘에 달과 별들을

맑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지으셨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형제인 바람과 공기로,

흐리거나 맑은 온갖 날씨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피조물들을 길러 주시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인 물로 찬미받으소서.

물은 유용하고 겸손하며 귀하고 순결하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형제인 불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불로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불은 아름답고 쾌활하며 활발하고 강하나이다.

 

 

 

자기가 걷고 있고, 그 앞 반경 50m 앞마다 커피숍이 있었음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난 생전 그런 야만스러운 소리를 처음 들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열심히 그 다음 시집을 내주세요. 읽고 싶어요.'라는 격려의 말에 '아뇨 시집 이제 안 낼 건데요?'라고 대뜸 대답했던 그 거만한 선생처럼, 그냥 악의적으로 다른 사람의 호의에 반발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아니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숍을 그렇게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의 욕구 때문에 땅에 붙박여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망가뜨리려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는 사람들과 같이 모여있을 때 빼고는 두번 다시 커피숍을 갈 수가 없었다. 그 결정에 후회가 없다.

다른 사람의 호의에 반발심이 생겨서, 욕구에 눈이 멀어 사람들은 자신을 망가뜨린다. 나는 공부가, 종교(특히 천주교)가 사람의 마음을 비뚤어지지 않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올바른 마음은 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다.

 

내가 교황님께 궁금한게 있는데, 성적 차이에 잘 대처해야 한다면 독실한 천주교도인데 간성(없으리란 법은 없잖?)은 어떻게 보실지? 간성에 대처하는 법을 따로 만드실 건지, 아님 억지로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 혼자서 정해서 그 범주에 넣으실 건지, 아님 악마라고 간주하고 또 엑소시스트 찍으실 건지 심히 궁금하다.

몇 문장 안 되는 데도 여성 차별, 동성애 차별, 트랜스젠더 차별이 확연히 드러나 있는 문구이다.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실 텐데... 환경 보호에 대해서나 쓰시지 왜 저런 사족을 넣는지 모르겠다. 아이에 대해서도 귀찮게 굴고 쓸모없는? 뭐 그런 말을 쓰시던데 사람들이 더 출산 안 하겠다 하면 어쩌시려고 ㅋㅋ

 

책도 그리 두껍지 않고 문장도 간결한데 이상스럽게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난 처음부터 끝까지 묵독으로 읽었지만, 소리내어 읽거나 필사하며 천천히 의미를 음미하는 걸 추천한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통합 생태론이 수학과 생물학의 언어를 초월하는 범주에 대한 개방성을 요청하고 인간다움의 핵심으로 우리를 이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와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해와 달 또는 가장 작은 동물들을 바라볼 때마다 모든 피조물을 찬미하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따, 딱히 수학의 언어를 초월하는 게 있다고 해서 이 문장을 적은 게 아닐 겁니다... 아마도.

 

세계적 변화의 사회적 요인들 가운데에는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 혁신, 사회적 소외, 에너지와 그 밖의 공공 서비스의 불평등한 분배와 소비, 사회적 붕괴, 폭력 증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 폭력의 증가, 마약 매매, 젊은이들의 마약 사용 증가, 정체성 상실이 있습니다. (...) 현실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동반하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은 관계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끊어 버릴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과 자연이 맺는 관계보다는 컴퓨터와 그 화면을 통해서 맺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꾸며 낸 감정들이 종종 생겨납니다.

그런데 나는 꾸며 낸 감정이 왜 나쁜지 잘 모르겠다. 내가 내 감정에 솔직하던 시절 얼마나 공격을 당했는데; 또한 그 사람들이 알기 싫은 걸 알려준 것에 대해서 나도 반성하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한때 오프라인 모임 엄청 다녀본 적 있는데, 어차피 몇몇 특정 사람들이 가면 쓰고 다니는 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똑같더만. 난 동네에서 성격 나쁜 사람으로 찍히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해주지도 않고 오프라인 사교장에서 호호거리며 억지로 감정을 꾸며내는 사람이 훨씬 가식적이라 생각함.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우리가 공리적인 실용주의에서 벗어나도록 해 줍니다. 아름다운 것을 경탄하며 음미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멋대로 사용하고 착취할 대상으로 변질되어 버린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습니다. (...) 우리가 인간, 생명, 사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틀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교육은 아무런 효과가 없고 교육적 노력도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이 없다면 소비를 지향하는 틀이 대중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강력한 시장 구조에 힘입어 더욱 지속될 것입니다. 

 

 

이 말은 맞다고 본다. 사람들은 아직도 욕심을 그만두지 않고 내가 사는 이 산골 마을에다가 난데없이 카zn를 차리겠다고 벼르면서 경관에 어울리지 않는 호텔을 곳곳에 세우고 있다. 살길을 찾기 어려운 20~30대들은 그래도 '도박은' 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주식에 빠져들고 있으며, 적은 돈과 단타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 인간들에게 사회는 돈을 더 부으라며 ETF 같은 새로운 소비 창구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솔직히 거의 경제 상태는 마지막 발악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아름답게 자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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