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눈 랑데부 4 - 완결
카와치 하루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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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지간한 절망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남주는 꽃가게를 운영 중인 한 여성을 짝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살림이 팍팍하여 고백할 용기는 못 내고 화초만 사는 중이라 가구도 별로 없는 원룸에 난데없는 화분만 즐비한 상황. 그러다 꽃가게 직원이 국제결혼을 하게 되어(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꽤 신기한 편, 일본은 그래도 다문화정책이 상당히 발달한 국가이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남성 시청자들이 주로 보는 애니메이션에서 대놓고 얘기가 나오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특히 일본 여성과 외국인 남성 결혼의 경우 더욱 그렇다. 기타 일본이 외국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을 참조.) 가게에서 새 직원을 구하자 그는 기회다 싶어 그쪽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고백할 용기를 못 내는 상황에서 직원의 은퇴 축하 파티 준비를 위해 우연히 사장님의 집에 들르게 된다. 그 집안에서 팬티바람으로 있는 남성을 발견하고 도망치듯이 나온 남주. 이후 은퇴 축하 파티에서 담배를 피러 나오다 남주는 다시 수수께끼의 남자를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여주의 전남편이자 유령이라고 고백하고, 하즈키의 몸에 한번만 빙의해보고 싶다고 청하는데...

잔잔한 애니메이션일 줄 알았는데 1화부터 네토라레의 충격이 짙다 ㅋ 그리고 토라도라에서 장난스런 그런 분위기(눈매가 무섭다고 소문났으나 전반적 그림체로 보면 귀여워 보이는 남주)가 아니라 정말 남주가 위험해보인다; 술담배도 꽤 하고 범죄자 A라고 해도 믿을만한 인상. 반면 유령씨는 정말 곱상해서 대비가 된다고 해야 하나. 아직 아내에게 미련이 있는 듯하지만, '결혼식 때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멩세했으니 죽었음 인연은 끝이다'라는 의견이 의외로 강고한 편이라고 할까. (그런데 다 허세였다 죽으면 이혼하라더니 막상 둘이 잘 되가니 왜 어린애처럼 질투하고 앉았어 ㅋㅋㅋ 그렇게 썩 성격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듯.) 사람들이 말한대로 항시 진지해 재미없는 작품까진 아니지만, 여러모로 성인이 봐야 통할 만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러고보면 이 애니메이션 꽤 기묘한 면이 많다.

1. 여자가 연상에 과부인 건 둘째치고 머리칼을 굉장히 짧게 자른 데다 화원 사장이라 흙투성이라는, 제법 참신한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다.

2. 여주 자신은 맨날 연하남 주인공을 짝사랑한다는데, 사실 그건 주인공에 빙의된 남편이고 정작 주인공은 남편의 의식 속에서 계속 여자를 생각하며 방황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처음에 하즈키를 만났을 땐 점장이 젊은 남성 특유의 외모만 봤는데 나중에 남편 빙의될 때부터 성격 따진 걸 보면 남주 혼자만의 짝사랑 이야기라고 봐도 될 듯.

3. 가게 2층에 집이 있는 걸 보면 어쩐지 집을 아예 산 듯한데, 이건 그래도 여주가 재산을 꽤 가지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반면 남주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알바를 전전하던, 그야말로 가진 건 몸밖에 없는 22세다. 물론 몸이 젊다는 데선 메리트가 있지만, 작중에선 여주보단 여주의 남편이 그걸 훨씬 더 의식하는 걸로 나온다(물론 앞에선 외모 본다고 설명했으나 외모와 몸은 다르다). 남편 건강이 생전에 안 좋아서 그런다는 설정이지만.

4. 일본의 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죽기 직전인데도 롯카에게 '나 죽으면 이혼해'라고 하는 걸 보면 재혼하기 상당히 빡센게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은 상대방이 사망하면 바로 사별로 처리되는 걸로 알고 있다. 심지어 이혼 중 일방이 사망해도 다른 상대방이 망인 상속인을 상대로 재산분할청구권 행사까지 가능하다.) 실제로 작년 일본에서 국내 여성은 이혼 후 100일 내 재혼이 불가하다는 내용의 법 규정이 채택되어 크게 파란이 일었다. 애니메이션이 나온 날은 2017년이지만, 아무래도 법 규정이 채택되기 전에 이슈화가 되기 때문에 아예 이 법과 작품이 관련없다고 보기엔 어렵다. 남편이 여성보다 적극적인 게 맘에 걸리나, '전 아내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다'는 메시지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면이 있다.

5. 남편은 병약미가 있고, 롯카는 단발머리일 때도 건강미가 넘치는 편. 산골마을 출신이라 나무도 잘 탄다는 설정도 있다. 남편 병수발하느라 여행도 못한다는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여기도 한국처럼 부양가족에 대한 복지정책이 부족한 건지... 한국도 치매 가족구성원 부양가족에 대한 복지정책이 미숙해서 체감도는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아마 남편이 젊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부양가족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건 원래 하즈키의 역할이 아니라 일본 국가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여기선 하즈키가 워낙 성격이 덤덤해서 부부 모두의 멘탈을 커버해주려 하지만.

난 나름 페미니즘 애니메이션이라 보는데 전에 에코페미니즘 동화책 다른 사람에게 추천했다가 가루가 되게 까여서 그냥 내 생각이라 말하겠다. 볼지 말지는 판단에 맡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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