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재의 아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
이기성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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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나날

 

어떤 길쭉한 것을 하나 주워서, 그것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버려진 신발짝이든 개의 목에 걸려 있던 끈이든, 개는 어디로 갔을까, 의문도 반성도 없이 그렇게. 거리에 개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버려진 신발이든 개끈이든 어떤 길쭉한 것이 검은 주머니 안에는 있고, 나의 손이 만질 때마다 불길하게 부풀어 올랐다. 헛된 기대 같은 것이라고 너는 웃었지만, 그것은 발이 없는 신발 같은 것일까? 피의 냄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검은 주머니는 점점 부풀고 날씨가 맑고 개들은 많았다.


 


 


 

이 구절이 야하게 들리는 거 저만 그러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개가 여행을 다니면 좋아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자갈밭을 많이 걸은 탓인지 아님 섬을 다녀오는 몇 시간 동안 숙소에 혼자 둔 탓인지는 몰라도 발 안쪽이 많이 상했다. 지금은 그래서 산책도 못 하고 집에 두는 상황이다. 신발이 있지만 그게 강아지의 발에 맞게 만들었는지도 의문이고, 강아지가 발이 부자연스러운 걸 싫어하니 강제로 신길 수도 없었다. 강아지에게 목끈을 달 때도 그랬다. 간식을 주니 산책은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줄을 매는 걸 싫어해서 도망다니니 억지로 잡아서 매야 했다. 지금은 하네스로 하다보니 목에 줄이 쓸린다거나 하는 신체적 불편함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물어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난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데에 회의감이 든다. 아무리 잘해줘도 이들은 주인의 잘못된 훈련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아마 지금 내 집에 있는 랑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우는 강아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집 전체에서 고어 테마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 시는 고어 같으면서도 어딘지 쓸쓸했다.

주정뱅이의 노래

 

이상하구나, 거대한 구름이 외투 속으로 날 받아주네. 늙은 나무들이 떨어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니, 유쾌하구나. 이런, 보도블록들이 내 허름한 구두를, 찢어진 발꿈치를 어루만지니, 좋구나. 이제 나를 위해 노래 불러줄 시인이 없다는 걸 알려주듯이, 새들은 새침하고 거미들은 분주하더니 까마귀는 거창하고 검은 깃을 마구 떨어뜨린다. 소녀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잠깐 본다. 검은 글자들은 왜 허공에서 자욱하게 흩어지고 있나. 파란 눈썹이 까마득한 촛불처럼 흔들리는, 아름답구나, 소녀는, 완성되지 못한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밤의 둥근 어깨와 먼 나라에서 온 주정뱅이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너는



 


 

시가 산문처럼 쭉 연결된 느낌이지만, 쉼표가 여러 군데 있어서 낭독하기 편하다. 내용도 고어한 점만 빼면(?) 대충 서정시같은 느낌이 든다. 시집도 아주 얇아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지금 나의 딸은 물속에 있어요. 내가 죽으면 나는 폭풍이 되어 잠든 그 애를 흔들 거예요. 그 애를 떠오르게 할 거예요.



 


 

세월호를 떠오르게 하는 구절인데 집안이 굉장히 처절하게 그려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고를 당해 더 가난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 현실.. 요새 부담스러운 나날이 점점 가중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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