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에 오시려거든
김인자 지음 / 푸른영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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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행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 천 년만 당신을 사랑하리라 했으나 한순간도 그 사랑은 내게 오지 않았다. 묶어두지 않겠다는 그것이 나를 위한 당신의 지극한 헌사였다는 걸 지금에야 알고 감읍한다. 나는 당신을 미친 듯 사랑했으나 당신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사랑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다. 오랜만에 내 취향인 가슴 뛰는 이야기를 만났다. 요즘 연애물은 좀 너무한다. 언제부턴가 멘붕물이 유행하질 않나, 애인이 되지 못한 하렘물 떨거지(...)들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나, 그것도 아니면 사랑 가지고 장난질하는 게 넘 많음. 물론 토라도라 같은 것도 좋았는데 후속작이 너무 독자들 의식해서 미연시처럼 나왔어 ㅠㅠ 나는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오네가이 티쳐같은 로맨스 애니가 한 번만 더 나왔으면 하는데 안 되나... 너무 큰 걸 바라나.


산문 겸 시라 해서 에세인가 하고 그냥 들춰봤더니 글의 수준이 꽤 높다;;; 이건 그냥 산문시라고 봐도 될 듯. 근데 책 두께도 꽤 두껍다 ㄷㄷ?

대관령의 자연을 사진으로 찍어서 글과 사진이 같이 나오는데 사진은 상상 속으로 남겨둔다. 가격도 싸서 직접 사도 괜찮을 것 같다.

 

페친이 독서모임에 가지 않는 사람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말인 즉슨 어떤 친구가 중독이라며 가지 말라고 추천했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에고 높은 나는 '아니 니가 무슨 가라 가지 말라 난리냐'부터 생각하겠지만, 나도 학창시절 꽤 긴 시간 책을 읽지 않았던 적이 있다. 수능 붙고 대학 가서 2학년 때 까지였나... 과제 때문에 보는 책도 중요한 구절 몇 읽고 후딱 덮었으니 꽤 긴 기간이다.

서평을 쓰는 게 무슨 죄는 아니다. 다만 그것을 하면서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만 하는 게 좋다.

 

결국 사람이 죽고 싶다 죽겠다 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 말의 뜻은 죽음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를 재고 다시 돌아왔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르시소스가 얼굴을 비춰 본 호수가 나르시소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결국 모 애니에 나온 인물처럼 눈을 빼서 포르말린에 넣어 보존한 건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싶고. 결국 실행에 옮기지만 않았음 된 거다. 아직 로봇이 우리의 뇌 속을 들여다보면서 생각만으로 죄가 성립된다고 할 때가 아직 오지 않았고.

 

나는 왜 엄마 젖가슴 같은 고봉밥같은 표현을 굳이 넣는지 이해가 안 간다. 뭐 굳이 잦이 같이 우뚝 솟은 고봉밥이 어쩌고 같은 말은 왜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요리도 못하고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할 의욕도 없는데 굳이 신경을 써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짜증도 나고 피곤하다. 어머니가 무지 요리를 못 하는 분이시지만 난 그렇다고 어머니에게서 모성을 느끼지 못하진 않았다. 그냥 아이의 영양을 신경써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걸 가지고 여성성이 어떻다느니 강조해서 여태 여성들 힘들게 하는 게 요리인듯.

모노드라마

 

기다림, 그 긴 고뇌의 소용돌이, 나는 약속된 신호를 기다린다. 그것은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만 아주 비장한 것일 수도 있다. 쇤베르크의 기다림(모노드라마)에서는 밤마다 한 여인이 숲 속에서 그의 연인을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다만 한 통의 이메일만을 기다릴 뿐이다. 이 둘은 동일한 고뇌다. 모든 것은 엄숙하다. 내게는 경중에 대한 감각이 없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인터넷 집단에 대한 추억 하날 말해보자면, 양꼬치 내가 사주기로 하고 가서 만났더니

"와 팔자주름 있네 역시 나이 먹었나 보다."

처음 만나자마자 그 말을 하는데 덕분에 그 후부터 인터넷 사람들을 만나기가 꺼려지게 되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으나 후폭풍이..) 앞으로도 만나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음.

직접 말하던 자기 담벼락에서 말하던 속내 보이니까 실례되는 내용은 마음의 소리로 말하길 권장. 니가 여자친구가 있던 나랑 바람피는 게 아니던 뭔 상관임. 난 처음부터 동생에게 술 사준단 느낌으로 나온 건데 지 혼자서 상상 오진 케이스였음. 그것도 사실 어릴 적 어른이 안경 쓴 채로 뺨때려서 생긴 흉터였는데 말해도 의심하고 사람 말 못 알아 쳐먹던.


나는 인터넷에서 사귄 사람이던 일상생활에서 만난 사람이던 간에 똑같은 강도로 마음을 여는 사람이라고 할까. 전자 후자 구분해서 친구관리하는 거 진짜 피로하고 머리 아픔.

 

세월호, 그 슬픈 폐허

 

참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만나기도 헤어지기도 하는 게 인연이겠지. 우리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것이 사랑이란 걸 깨닫지 않았던가. 세월이 흐른 후에야 고통의 상흔조차도 뜨겁게 껴안아야 할 불꽃이었다는 걸 알게 되듯 다음 생도 그럴까. 미안하단 말, 절대로 용서하지 말란 말, 잊지 않겠단 말, 우린 얼마나 더 슬픈 폐허를 감당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더 아파야 지금의 이 비극이 감쪽같이 처리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실없어 보이는 봄비가 뭇 생명을 키우듯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이들의 걸음조차도 시간은 내려야 할 역에 정확히 데려다준다는 걸.



 


 

댓글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걸 보면 넷상에서 봤다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막 해대면 안 된다는 내 말이 더 검증되었을 텐데. 그런데 딱히 국회의원 등 유명인사 뿐만 아니라 일본의 스튜디오가 불에 타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악플을 달며 자신의 애국심을 과시하려는 사람들도 치가 떨리긴 마찬가지다. 우연일까, 그 스튜디오에서는 여성 디렉터가 유달리 많았다.


그래서 난 악인을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건장한 청년 남성이거나 덩치가 커 몸집 작고 왜소하고 어려보이는 여성이 겪는 일을 잘 모른다. 차라리 침묵이 몸에 좋다는 거짓 위로가 낫다.

 

영화 위플래쉬

 

대관령 내려오기 전날, 영화, '위플래쉬(영화 속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곡 제목으로 중간 부분 드럼 파트의 '더블 타임 스윙' 주법으로 완성된 질주하는 독주 부분이 일품이며 단어의 원뜻은 채찍질)'를 봤다. 몰입했다. 음악을, 재즈를, 미친 드러머의 연주를 온몸으로 보고 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청년 시절 최고가 되는 꿈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나에게 한 젊은 드러머의 광기는 전율할 만했다. 사랑도 일도 예술도 미쳐있을 때가 아름답다.



그렇게 재밌나요 뭔가 강압적인 성격의 선생님이 나온다고 해서 안 봤는데 봐야 하나 ㄷㄷㄷ

 

우울한 봄날의 실렌시오

 

꽃들이 잠들어있네/글라디올러스와 장미와 흰 백합/그리고 깊은 슬픔에 잠긴 내 영혼/난 꽃들에게 내 아픔을 숨기고 싶네/인생의 괴로움을 알리고 싶지 않아/내 슬픔을 알게 되면 꽃들도 울 테니까/깨우지 마라 모두 잠들어 있네/글라디올러스와 흰 백합/내 슬픔을 꽃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내 눈물을 보면 죽어버릴 테니까.-실렌시오 노랫말



 


 

다소 폼 잡으려는 의도가 강한 거 아닌가 싶지만, 내가 여태껏 본 에세이 중 훌륭한 마무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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