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처럼 낯선 창비시선 375
전동균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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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몇잔 중에서

 

아니 왜, 회촌 개울 햇살들은

떠듬떠듬 책 읽는 아이 목소리를 내는지,

징검돌 위에 주저앉은 나는

담배나 한대 피워 무는 것인데

 

휴가를 얻어도 갈 데 없는

이 게으르고 남루한 생은

탁발 나왔다가 주막집 불목하니가 되어버린 땡추 같은 것,

맨 정신으로는 도무지 제 낯짝을 마주 볼 수 없어

마른 풀과 더불어

낮술 몇잔 나누는 것인데

 

아 좋구나, 이 늦가을 날

허물고 떠나야 할 집도 없는 나는

세상에 나와

낭끝 같은, 부서질수록 환한 낭끝의 파도 같은 여자의 눈을

내 것인 양 껴안은 죄밖에 없으니



 


 

이렇게 자꾸 낮술 이야기만 올리면 제가 낮술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나 낮술이 좋습니다 ㅈㅅ...



이렇게 선명한 시집은 처음이라 약간 당황했다. 아니 물론 메시지도 분명하긴 한데...

1. 가톨릭 이야기는 안 하지만 왠지 성당 사람이 할 만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통 개신교들은 술 안 마신다고 하지 않나? 수도원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서도 술 얘기 많이 나오니 아마 맞을 듯(...)

2. 마지막 구절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페이스북에다가도 블로그의 인상적인 구절란에서도 시의 마지막 구절을 적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책의 마지막 구절을 중시하는 편이라 편애하지 않도록 첫구절이나 중간 구절을 의식적으로 적는 편인데, 이번엔 아무래도 그 균형을 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도 마지막 구절에 중요한 이야기를 일부러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3. 나이 든 남성 시인 분들이 주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번 시집에서도 개에 관한 시가 압도적이다. 물론 다음에 읽을 포유류의 사랑 시집처럼 고양이만 왕창 나오는 시집도 있지만, 그건 상당히 이례적이고.

촛불 미사 중에서

 

기도하소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를 빚으신 그 죄

옷을 찢으며 통회하소서

 

늘 저희를 잊고 있었던 저희가

늘 당신을 버리고 싶었던 저희가

캄캄한 울음을 촛불처럼 밝혀 들고 가나이다, 주여



 


 

재밌는 시가 나오다가도 가끔씩 화자가 가슴을 쥐어뜯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돌을 날개라 부른다는 표현이 빈번하게 나오는데, 아무래도 시인이 지니고 있는 화두인 듯하다. 이 시는 파울 첼란의 테네브라에에서 변용했다 한다.

 

납작보리

 

아버지 화장 모시던 날, 시월인데 북천 고추바람 유독 매웠더랬습니다 아따, 꼭 그 양반 성깔 같네, 당숙이며 사촌형님들 덜덜 떨다가 육개장에 소주잔 적시러 식당으로 몰려간 뒤에 아버지 몸은 굴뚝을 나와서도 한참을 펄럭대다 살얼음 하늘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는데요 둘째도 납작보리라고, 나자마자 외면당한 소현이, 여섯살배기 그 어린것이 제 엄마 옷자락을 꼭 붙잡고는 서럽게 서럽게 우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기특해라, 장손 씨는 다르데이, 니 그래 할배가 좋더나? 관을 안고 몇번이나 쓰러졌던 큰고모가 흐뭇한 목도리를 감아주며 묻자, 더 크게 엉엉대다 잔뜩 코 막힌 소리로 아니요, 피카츄 인형을 잃어버렸어요



 


 

이상하게 장례식에 가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데, 마치 친구 손 잡고 교회에 간 듯한 어린시절과 같이 낯설고 머쓱하다. 그런 걸 보면 난 내 죽음처럼 다른 사람의 죽음에 별로 느낌이 없는가 보다. 어떤 사람이 나와 안 좋게 이별하면 그렇게 눈물이 펑펑 나는데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간혹 장례식에서 아이들이 울지 않는다고 뺨을 갈기는 경우를 본다. 그런 식으로 아이를 장난감 취급한다면 살면서 당장 편할지 모르나 어른이 되면 나처럼 장례식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울 상황에 울지 못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과 정서가 약간 달라서 사후 수일이 지난 다음에야 죽은 사람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그나저나 피카츄 인형은 정말 목청 높여 울 만하다.

 

건기 중에서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12시 42분. 딱 딱 딸깍 딱 딸깍...... 낡은 텔레비전 체널 돌리는 소리 같았다. YTN 뉴스에서 프리미어리그 중계로, 패션쇼로, 다큐멘터리로, 어느 것도 볼만한 게 없다는 듯 체널을 바꾸는 소리. 쯧쯧, 저이도 꽤나 외롭고 심심한 모양이군, 흐트러진 이불을 고쳐 덮고 몸을 웅크렸다.

 

또 소리가 들렸다. 3시 18분. 술판이라도 벌어졌는지 병 따는 소리, 잔 부딪는 소리, 웃으며 수런대는 소리, 마침내는 낮은 신음 소리, 그 틈을 비집고 딱 딱 딸깍 딸깍 딸...... 텔레비전 체널 바꾸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SOS 신호라도 보내듯이.

(...)

5시 2분. 문득, 바람의 냄새가 달라지는 건기에는 물가의 집을 허물고 사막으로 떠나간다는 아프리카들개가 떠올랐다.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했다, 1003호에는.



 


 

그러고보니 학교에 다닐때만 해도 친구들이 무용담처럼 자기가 본 귀신을 떠벌릴 때가 있었고 인터넷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제법 횡행했었는데 지금은 조용하다. 다들 불을 켜고 살아서 그런가 인구가 너무 많아서 그런가 아님 인간이 더 무서워서 그런가.

 

진부터미널 식당 중에서

 

산판으로 간다는 사내들은

제엔장, 티켓이나 끊자,

화투판을 벌이고

 

그사이 곰 그림자 몇 슬며시 들어와

4홉 소주를 단숨에 비우고 사라졌다

 

사행의 밤을 끌고 온 길들이

모였다가 헤어지는

진부터미널 식당

 

어떤 이는 흐린 불빛을 밀고 나가 한 세상을 일으켰고

어떤 이는 칼을 버리고 출가를 했지만

 

다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산나물 보따리를 꼭 안고 졸고 있는 노파의 쇠스랑손과

멀어도 너무 먼 꿈속 꽃빛을 더듬을 뿐



 


 

제가 말하기 참 민망한 말이지만 술은 적당히 드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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