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은 용의 홈타운 창비시선 383
최정례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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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골다

                   

코를 골았다고 한다. 내가 코를 골아 시끄러워 잠을 못 잤다고 한다. 그럴 리 없다. 허술해진 푸대자루가 되어 시끄럽게 구는 그자가 바로 나라니, 용서할 수가 없다. 도대체 몸을 여기 놓고 어느 느티나무 그늘을 거닐었단 말인가. 십년을 키우던 고양이 코기토도 코를 골았었다. 그 녀석 죽던 날, 걷지도 못하면서 간신히 간신히 자기 몸을 제집 문 앞까지 끌고 가 이마 반쪽만을 문턱에 들여놓은 채 죽어 있었다. 아직도 녀석은 멀고 먼 자기 집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끌고 가기 너무 고단해 몸을 버리고 가는 자들, 한심하다. 어떤 때는 한밤중에 내 숨소리에 놀라 깨는 적이 있다. 내 정신이 다른 육체와 손잡고 가다가 문득 손 놓아버리는 거기. 너무나 낯설어 여기가 어디냐고 묻고 싶은데 물어볼 사람이 없다.

 



 


 

릴케의 팔꿈치 읽다가 움찔했는데, 앞니가 부러져서 고생한 적이 있고 이게 정말 가장 힘들었던 때였던지라 가끔가다 꿈에 나온다(...) 지금은 고쳤지만. 치아라는 건 확실히 좀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 외에도 굉장히 끔찍하고 떠올리기 싫은데 흘깃거리게 되는 공포를 전반적으로 잘 표현한 시집인 듯하다.


장편 시가 하나 있었는데 낙태와 관련된 데다 어쩐지 소설같은 느낌이 들어서 맘에 들진 않았다. 옛날 피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아이를 많이 낳던 분들, 특히 여자 아이를 낙태하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사회에 관해 너무 많이 다룬 나머지 되려 시대성이 떨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요즘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낙태에 되려 관대해졌으니 말이다.

 

존재의 서글픈 중에서


최승자를 위하여


 


이걸 뭐라고 번역해야 좋을까


You are living for nothing


 


당신은 뭔가를 위해 사는 게 아니네


당신은 헛것을 위해 사네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당신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사네


 


어쨌든


당신은 사막 깊은 곳에 작은 집을 짓는다고 들었네


제인은 당신의 머리칼 한줌을 가지고 돌아왔네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한 그날 밤에


당신이 주었다고 하더군


 


정말 모든 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인지?

 

 



 


 

사람은 결국 알고 있으면서도 속는 경우가 많다. 속는 사람들을 비웃는 인간들이 많지만, 그럴 경우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하고 다짐만 하면 족하다. 아니지. 그래도 속아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앞서나간다면 침착하게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을 돈으로 팔아넘긴 사람들이 성공하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살아갈 아무 목표가 없어야 그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잘못된 것은 돈에 눈이 먼 시스템일 뿐이고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잔인한 속임수에 속아넘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출할 신용마저 없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나마 돈이 있으니까 속을 수 있는 거라고... 나같이 돈도 힘도 없는 자는 속을 여유도 없다.

 


Spirit Museum 중에서

                   

 

                   

첫 방에는 앱솔루트 보드카의 광고, 앤디 워홀의 작품이라고 했다. 진흙밭을 그린 것 같은 추상화 몇점. 그다음 방에는 작은 병의 액체들, 신비로운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술잔과 술병들, 바의 의자들, 영화 One Summer of Happiness의 장면, 야외에서 나체로 누운 어느 여배우의 젖꼭지, 몽환 속에서 속삭이는 사랑의 말들, 좁은 침상에 누워 빙글 돌아가는 천장을 향해 중얼거리는 술꾼 체험 장치가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 영혼들. 몇개의 어두운 방을 나체로 뛰어다니며 털 마이크를 들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터뷰를 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내게 다가올까봐 도망쳐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와 친구에게 전화했다. 영혼 박물관이라는 곳에 갔었다고. 친구는 깔깔 웃으며 이 나라에서 sprit란 알코올을 의미하며 영혼이라는 뜻 따위는 없다고.



 


 

사실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매우 좋아한다. 한 몇 시간은 사진이나 그림을 감상하며 빙글빙글 돌 자신 있다. 돈이 없어서 요새는 꽤 활력을 잃었지만, 돈 모으면 이런 곳들만 골라 투어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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