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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되는 꿈 ㅣ 문예중앙시선 47
신동옥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엔젤 탱고 중에서
썩어 들끓는 냄새를 가리는
후추와 부추와 식초
덜 익은 몸으로 거미줄을 자아
천장을 끌어내려 앉히는
집거미와 국간장과 실고추의
사특한 이종교배
달무리에 뭉친 파란 밥찌끼로
당신이라는 잔반과 향료가 몸을 섞어
서로를 으깨고 비비고
(...)
당신의 불가해한 찬장이 나의 섭생을 훈육할 때
당신의 남자는 물고기처럼 싱싱하고 당신의 조리법은 절망학이다
처음 시를 접할 땐 음식 만드는 얘기거나 러브 스토리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읽어보니 아니었다.
그런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시이다. 나도 요리 못해서 그러나. 능력과는 좀 다른 이야기같지만 ㅋ
비트 시리즈는 읽을수록 점점 노래가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PTSD에 대해 이렇게 잘 표현한 문학작품이 또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화자가 뭔가 삶에 발버둥치는 거 같아 짠하네. (그리고 결말은 엘빈;;; 최근 문학 경향 적응 안 된다. 진격의 거인도 그렇고 왜 이리 다들 꿈과 희망도 없이 찌드냐.)
연해주 1937 중에서
ㅡ증조부 영전에
건배, 크고 아픈 나의 인간 친구여 내 고향은 조선 하고도 남양 내 영혼은 긴 그림자를 끌고 저 얼어붙지 않는 바다를 건너네 얼어붙은 내 핀 이제는 거의 연보랏빛 핏속에 움직이는 세포는 작은 뗏목이라네 건배, 아리랑은 아리랑이라는 뜻이고 안녕은 안녕이라는 뜻이고 노래는 노동에 좋고 술은 잠에 좋다네
나는 게으른 십장이 되어 채찍을 견디며 탄광에 들락거리다 연해의 항구에 호박돌을 박아 넣다가 핏속에 숨겨둔 뗏목을 꺼내겠네 훗날 나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은 살아 돌아온 나의 곰방대에 머리통이 깨져가며 ㄱㄴㄷㄹㅁㅂㅅ 배워 시인이 될 테고 어느 가을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는 배를 타고 이곳에 오겠네
원래 시인이 자기 가족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이 시는 진심으로 자신의 가족과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으므로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