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픽션 - 몸에 관한 일곱 가지 이야기
김병운 외 지음 / 제철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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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일어난 목하가 나직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좋았다. 그 목소리만 남아 있다면 이곳에 영원히 붙박여 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목하에게 그 말을 했나, 만약 하면 너무 자주 하게 되는 거 아닌가 염려하다 보니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


 


 

 

애정표현은 생각나는 대로 합시다.
나는 그렇게 하니 후회하는 게 없음.


1. 강의를 듣거나 수업을 들을 때 삑사리가 나는 선생님들을 많이 본다. 특히 학원의 스타강사일수록 더욱 그런 듯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가정환경때문에 억척스러워진, 흔한 한국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시달려 있었다. 어머니를 갑작스레 잃은 그는 어떻게 세상과 삑사리를 잘 다스리고 교섭해나갈 수 있을까. 독특한 발상이 인상적이었던 김병운의 말 같지도 않은.
정직이 최고라는 교훈도 덤으로 보여주는 듯한 올바른 소설이다.



 


2. 원래 나이 들면 썩는 것과 상관없이 치아가 흔들리고 이상 생기고 그러긴 한데 한 번 치과 안 가본 사람들이 꼭 민감하게 반응하더라.


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1년에 한 번 돈 내고 스케일링 받으면서 정보 캐보세요(...) 어떻게 하라고 다 얘기해 준다. 양심 있는 의사라면 심각해지기 전에 되돌리거나 유지할 수 있는 관리방법 가르쳐준다. 그러나 이 여자의 경우 진료하러 간 치과에서도 쓸데없이 CT를 찍지 않나 재수 좀 꼬인 듯.



 


ㅠㅠ 아니 그나저나 남자 왜 이리 팩트충이야.


팩트충은 사실 위기를 벗어나는 데 적합치 못하다는 걸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가 이 단편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지는 중년 아닌가? 그런 건 언급도 안하다니 지만 살려는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지적질 좀 고쳐야겠지만...



 


3. 불능의 천사는 내가 유독 주목하는 시인의 단편소설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사무장의 명령을 받고 한 히키코모리로 보이는 단장님의 아들을 돌보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고 허구하면 집안에서 난봉을 일으키는 소년을 증오했지만, 그도 질리다보니 점점 소년이 갖혀있는 복층의 단독주택이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소년과 단장님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려 시도했지만, 소년의 단장님에 대한 애틋한 충성심과 단장님의 맹렬한 거부를 발견할 뿐이었다. 방임가정의 단면을 잘 보여주기도 하지만, 집단에 소속되어 평범하게 살려는 맹목적인 심리를 잘 짚어낸다. 어느 정도는 청소년 시절의 나 같기도 한데, 생각해보면 평범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시기를 단장님의 과민한 반응 때문에 더욱 힘들게 보내는 것 아닌가... 그런데 단장님의 맹목적인 거부는 소년의 특성을 말라죽이려는 통과의례같기도 한데.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주인공이 소년인지 소년이 주인공인지 주변 사람들도 주인공도 헷갈려하기 시작한다. 주제도 주제지만 필체가 꽤나 광기에 절어 있다.

4. 솔직히 유재영 이번엔 좀... 기억을 빼가서 무언가랑 교환하거나 저장하는 스토리는 기묘한 이야기에서도 그렇고 흔히 쓰이는 이야기인데. 특이한 거라곤 배급형태 정도;; 단편에게 너무 거창한 걸 바라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말가면 좀 달라지려나. (결국 달라지는 건 없었다.)



 


5. 내가 책을 읽을 때마다 부모님은 나에게 눈으로 묻는다. 너는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많은 실수를 반복하느냐고. 너는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해, 아무리 나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회적 인기를 외면하기 위해 수없이 책읽기를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그렇다면 어쩔거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걸 알아봤자 내가 책읽기를 중단할 수 있겠냐고.


무슨 수를 써도 종국에는 죽음에 처할 뿐이라고 전남친은 말했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그걸 물어봤자 어쩔 거냐고.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냐고, 혹은 책이 어떻게 해줄 수 있냐고. 문송합니다 라는 말이 생각났다. 중요한 때 튀어나오는 습관만큼 나와 내가 읽은 책은 무력하다. 그러나 내 몸 밖에 있는 남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하더라. 자타가 인정하듯이, 내가 잘하는 일은 오직 내가 하는 덕질에 사람들을 영업시키는 일이다. 나만큼 사람을 쓸모없어지게 하고 실수를 반복하게 하는 일에 남을 끌어들이게 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차라리 사람을 바이러스에 가깝게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최근엔 친구와 오디세우스와 일리아스를 읽기로 했다. 떠벌리는 것 외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고대 시절 이야기에 남을 빠뜨리고 파탄내는 내가 죄인이지 뭐. 그러나 몸에 밴 기억은 그만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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