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워'를 볼 때면 자주 눈물이 난다. 못배우고 가진거 없고 애까지 딸린 이혼녀(배종옥 분)가 대학교수인 총각(박상면 분)과 연애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거나,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형님 댁에 보내놓고 안절부절못하는 며느리(박성미 분)가 남편에게 '그거 하나만 알아줘. 나 너무 힘들어'라고 애써 말하며 눈물 흘리거나, 남편과 바람난 젊은 여자의 병간호를 하러 집을 나서며 '엄마 바보짓하러 간다'라고 엄마(고두심 분)가 잠든 딸에게 말을 하거나, 등등의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눈이 뜨거워진다.

이 드라마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엄마와, 억척스럽게 일하며 엄마와 아이와 동생을 부양하는 이혼한 딸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사랑이 변한다고 해서 사랑을 안하는건 바보같다'며 유부남을 사랑하는 작은 딸(한고은 분)과, 남자를 바꿔가며 외로움을 달래는 여자도 있다. 이들은 모두 용감하다. 울고 아파하다가도 필요하면 세상과 부딪쳐 소리지르고 싸울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동정하기보다는 힘내라고 응원을 하게 된다.

'거짓말' 이래로 노희경 작가의 팬이 되었다. 그는 과장하지 않으면서 삶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대사가 좋다.

'맨날 맨정신으로 살기 재미없잖아. 가끔...미치자. 야'

'희영씨가 너 싫다는데 이혼하면 안되니?'

'너무 한꺼번에 모든걸 잊으려 하지마. 그냥 시간에 의지해. 그러다 지나간 사람들한테 미안해지면, 미안해하면서...그렇게...'

'우리 변할 때 변하더라도 사랑하자. 이번만은 안 변할 수도 있다고 기대하면서.'

'화를 잘 낸다. 맘이 약하다. 가끔 되게 외로워한다. 그래도 긍정적이다. 강하다. 약하다. 유머가 있다. 유머가 없다. 어머니랑 민이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목소리가 이쁘다. 사랑스럽다. 무서울 때도 있다. 진지하다. 생각이 없다. 생각이 깊다. 털털하다. 세심하다. 박영민이란 사람을 믿을까 말까 매일 고심한다.'  '..딱 나네..'

'우리가 엄마를 여자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어른이 되는거야.'

자꾸 눈물이 나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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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보다 아름다워를 좋아하시는 분을 만나서 반갑네요~ ^^ 정말 노희경 작가의 매력은 튀지않으면서 인상적인 대사 인거 같아요. 요새는 통 못챙겨봐서 괴롭지만...ㅠㅜ 드라마보다보면 인상적인 대사가 있잖아요. 그런거 정리해볼까 하구 대본을 받았는데, 뭐하나를 콕 찝을수가 없더라구요. ^^ 앞으로도 따뜻한 드라마 잘 챙겨보자구요~~ ㅎㅎ
 

몇달만에 서점에 나갔다. 이제는 서점에 가는 것이 책을 고르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그저 책 냄새를 맡고 손에 감촉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책 사이를 걷고 이것저것 손 닿는대로 집어들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지는 않는다.

서점에 갈 때마다 늘상 들러보는 곳 중 하나는 열린책들 코너이다. 열린책들은 가장 믿고 좋아하는 출판사이다. 러시아 문학에 대한 애정도 마음에 들고, 우리 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내어 꾸준히 소개하는 태도도 좋다. 게다가 열린책들에서 찾아낸 작가들이란 일정 정도의 수준을 갖추고 있기에, 일단 믿고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실망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평균 이상은 된다.

폴 오스터의 새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환상의 책'은 이미 읽었고, 두께가 얇은 '타자기를 치켜세움'을 골라 들고 읽기 시작했다. 다 보는 데 한 5분이나 들었을까. 30여 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는 타자기에 대한 짤막한 감상이다. 그리고 폴 오스터와 친분이 있는 화가 샘 메서의 다양한 타자기 그림들이 곁들여있다. 아니, 그림들 한 켠에 폴 오스터의 글이 곁들여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것이다.

책에 대해 말하자면, 실망이다. 아니, 책이 아니라 출판사에 대한 실망이 더 크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착과 각별한 느낌을 나타내는데 과연 이 정도의 투자가 필요한 걸까 의심스럽다. 과도한 두께의 종이에, 몇 페이지 되지도 않고, 게다가 특별히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이 7,500원의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걸까. 미국판의 경우, 폴 오스터의 타자기로 직접 쳐서 그대로 인쇄했다고 하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어판은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출판사 역시 기업이므로 이윤 추구는 당연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열린책들은 그 선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미지가 중요하듯 열린책들도 지금까지 쌓아온 좋은 이미지를 망가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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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 피터팬

피터팬은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꿈이다. 아무 걱정없이, 무엇에도 책임질 필요없이, 언제까지나 즐겁고 행복한 동심으로 남아있고 싶은 바람. 중요한 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책임지고 그것에 대한 걱정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친구를 만들고, 결혼으로 가족을 이룬다. 이러한 관계들을 통해 인간은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배우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항상 좋은 감정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때로 상처받고, 원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고, 생활의 무게에 짓눌리기도 한다. 

피터팬에게 이것은 선택이다. 어른이 되어서, 힘들지만 세상과 어울려 살 것인가, 아니면 아무 구속없이 자유롭게, 그러나 외롭게 아이로 남을 것인가. 피터팬은 아이로 남을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외롭다.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알게 해 준 웬디는 어른이 될 것을 선언했고, 그와 함께 지냈던 길잃은 아이들은 웬디와 함께 가정의 따뜻함 속으로 돌아갈 것을 선택했다. 그의 영원한 적일 것처럼 보이던 후크마저 악어 뱃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네버랜드의 요정들뿐이다. 웬디와 사랑을 하면서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외로움을 택한 겁많은 아이.

그런 점에서 보자면, 웬디의 아버지가 용감하다는 어머니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웬디의 아버지는 소심한 은행가로 직장에서 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아이들에게도 그다지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한때는 꿈많은 젊은 시절이 있었을 거다. 그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서랍속에 넣어두고 가끔씩 꺼내보면서, 점점 더 닫기 힘들어지는 서랍을 애써 닫고 돌아서는, 남편이자 아버지이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일러준다. 서글프다.

아버지가 가족과 세상을 버리고 나선 모습이 바로 후크처럼 보인다. 영화에서는 제이슨 아이삭스가 아버지와 후크역을 동시에 맡아서 놀라울만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쨌거나 후크는 피터팬의 어른 버전이다. 그 역시 무엇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지만, 나이가 들었고 몸서리처지게 외롭다. 그래서 그는 피터팬과의 '관계'에 집착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인물은 웬디이다. 소녀에서 여자로 거듭나려는 시기에 있는 웬디는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그런 그녀에게 어른이 될 필요가 없는 네버랜드는 멋진 장소이다. 그러나 피터팬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웬디는 결국 그것이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몫임을 깨닫는다. 어른이 되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 웬디는 이제 자신의 선택에 따라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유쾌하고 신나는 모험 장면이 많은데도 전체적으로 서글픈 느낌을 주는 영화다. 감독은 어른이 되는 것과 아이로 남는 것, 어느 쪽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각각 감당해야할 무게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현실의 우리가 아이로 남을 수 없다면,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웬디처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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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기간 읽은 책들.

체홉 단편선은 진작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단편의 특성상 하나씩 쉬엄쉬엄 읽다보니 시간이 좀 걸렸다. <관리의 죽음>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러시아 관리의 모습에 웃기 시작하여 읽는 내내 꽤 즐거웠다. 지난번 대학 동창들을 만났을 때, 한 녀석에게 다른 놈들이 전형적인 러시아 관리같다고 놀렸던 일이 기억난다. 러시아 소설이나 희곡을 읽다보면 관리들은 대개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한쪽은 소심하고 사소한 일에 안절부절 못하며 윗사람에게 굽신대는, 농노 근성이 몸에 박힌 하급 관리이다. 고급 관리쪽은 거만함이 온몸에 배어있는데다 융통성 없고 고집이 세며 아랫사람을 무시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다. 짜르(황제)의 통치 아래에서 관리란 혹은 정부란 늘 그런 존재로 러시아인들에게 비춰졌기 때문일게다. 어쨌거나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생각난김에 고골의 단편집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인권, 환경, 복지 등 우리 사회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다. 내 경우, 모든 문제에 조금씩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건 결국 어디에도 관심없다는 말과 동의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이란 고작 관련 서적을 몇 권 읽고,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좀 더 생각있는 척 하는 것 뿐이니까 말이다. 그 동안 살면서, 여자이기 때문에 사소한 불이익을 당한 경우가 있긴 했으나, 그다지 큰 문제는 겪지 못했다. 주변에도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여겨질만한 사례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관심있는 척 할 수 있다. 직접 나설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십시일반>을 읽으면서 한켠으로는 가슴이 답답했고, 다른 한켠으로는 과연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고민중이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좋은건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지난해부터의 화두다.

이성복의 시집은 내내 가방에 넣고 다닌다. 시간나면 펼쳐서 한 두개씩 읽곤 하는데, 역시 시는 내게 어렵다. 감수성이 별로 없는 모양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그걸 다시 확인하는건 역시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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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소설의 마지막 줄을 읽고서도 책을 덮지 않은 채 그대로 앉아 있는 나를 의식한 건 잠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근래 읽은 것 중 최고의 작품.

그러나 리뷰를 쓰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할 듯 싶다. 폴 오스터는, 아무래도 독자들이 그저 시간을 때우는 정도로 자신의 책을 읽도록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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