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만에 서점에 나갔다. 이제는 서점에 가는 것이 책을 고르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그저 책 냄새를 맡고 손에 감촉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책 사이를 걷고 이것저것 손 닿는대로 집어들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지는 않는다.

서점에 갈 때마다 늘상 들러보는 곳 중 하나는 열린책들 코너이다. 열린책들은 가장 믿고 좋아하는 출판사이다. 러시아 문학에 대한 애정도 마음에 들고, 우리 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내어 꾸준히 소개하는 태도도 좋다. 게다가 열린책들에서 찾아낸 작가들이란 일정 정도의 수준을 갖추고 있기에, 일단 믿고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실망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평균 이상은 된다.

폴 오스터의 새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환상의 책'은 이미 읽었고, 두께가 얇은 '타자기를 치켜세움'을 골라 들고 읽기 시작했다. 다 보는 데 한 5분이나 들었을까. 30여 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는 타자기에 대한 짤막한 감상이다. 그리고 폴 오스터와 친분이 있는 화가 샘 메서의 다양한 타자기 그림들이 곁들여있다. 아니, 그림들 한 켠에 폴 오스터의 글이 곁들여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것이다.

책에 대해 말하자면, 실망이다. 아니, 책이 아니라 출판사에 대한 실망이 더 크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착과 각별한 느낌을 나타내는데 과연 이 정도의 투자가 필요한 걸까 의심스럽다. 과도한 두께의 종이에, 몇 페이지 되지도 않고, 게다가 특별히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이 7,500원의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걸까. 미국판의 경우, 폴 오스터의 타자기로 직접 쳐서 그대로 인쇄했다고 하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어판은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출판사 역시 기업이므로 이윤 추구는 당연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열린책들은 그 선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미지가 중요하듯 열린책들도 지금까지 쌓아온 좋은 이미지를 망가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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