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는 영화관보다는 집에서 비디오로 보는 편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화면의 크기가 문제될 것도 없고, 굳이 개봉 당시에 봐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비디오가 나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 TV 화면으로 영화를 감상해도, 소소하게 느껴지는 재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거의 막바지라 대부분의 개봉관에서 간판을 내렸는데, 친구가 꼭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우겼다. 난 차라리 <피터팬>을 보고싶건만. 그런데 결과는, 만족이다. 어제밤 영화가 끝난 이후로, 아침에 눈을 떠서도, 지금까지도 내 눈과 입은 웃고 있다.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뭉클한, 소박한 감동을 전해 주는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실미도>와 더불어 여태껏 박스 오피스 상위에 머물렀던 이유를 알겠다. 그러고 보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람들은 사랑을 믿거나, 가슴에 호소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보다.

열 몇 가지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는 촘촘하게 얽혀 있다. 뭐 다소 황당한 설정도 있긴 하지만, TV 드라마보다 억지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바람피운 남편은 가정으로 돌아가고, 엄마를 잃은 11살 아들은 새아빠와의 사이가 돈독해지고 또 멋진 여자친구를 얻고, 애인의 배신에 상처입은 작가는 새 연인을 만나고, 늙은 가수와 매니저는 몇십년간의 정을 확인하고, 독신인 수상은 비서와의 사랑에 성공하고...등등 행복한 결말이다. 그런데 다만, 2년 7개월에 걸쳐 짝사랑하는 멋진 '칼'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새라'가 있다. 오빠가 곁에 있다 해도, 그 둘 역시 예쁜 사랑으로 맺어졌으면 좋았을걸. 어쨌거나 이렇게 다양한 얘기들이 산만하지 않게 전체적으로 잘 조화되어 있다는 것 또한 이 영화의 장점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은 공항의 풍경으로 채워져 있다. 오랫만에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해후를 기뻐하며 서로 얼싸안는 모습들. 그저 스쳐지나갈 수 있는 낯익은 풍경에 눈을 돌린 감독은 무척 따뜻한 사람인가 보다.  

눈이 온다.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면 온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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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미의 <아주 특별한 관계>

친구에게 책을 넘겨주기 전 다 읽어버릴 작정으로 어제 저녁 시작했는데, 거의 끝나간다. 무려 15쌍의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지만, 내용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금방 읽을 수 있다.

장점이라면, 여러 화가들의 작품과 사생활을 조금씩 맛볼 수 있다는 점. 그러나 대체로 내용이 빈약하다. <화가 정은미의 로맨틱 갤러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각 화가나 그림에 대한 정은미 개인의 감상 정도라고 보면 무난하다. 정은미 자신의 작품들은, 글쎄, 나쁘지는 않다. 여러 화가들에 대한 오마주라고나 할까. 정은미 자신이 원래 어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지 전혀 지식이 없으므로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오랫만에 본 그림 때문에 좋다.

 


처음보는 시선, 살바로드 달리의 <십자가에 매달리신 성 요한네스의 그리스도>

 


너무나 에로틱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섬뜩하면서도 슬픈 프리다 칼로의 <두 사람의 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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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시장에서 주문한 <화양연화 OST>를 받다.

이 영화, 몇 년 전 달랑 네 명이 극장 하나를 차지하고서 보았다. 아무리 조조였다고는 해도 좀 너무하지 않았나 싶다. 그 때 아마 한달도 못 버티고 개봉관에서 내려갔던 것 같다. 스타일도, 하는 얘기도 달라진 왕가위 감독에게 아마도 관객들이 적응할 수 없었던게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감탄했던 건 사실 장만옥의 몸매였다. 온갖 무늬의 차이니즈 드레스를 입은 장만옥의 뒷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양조위 같은 괜찮은 배우조차 시선을 끌지 못했다. 장만옥은, 단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화면을 꽉 채울 수 있는, 근사한 배우다. 그녀는 얼굴 뿐 아니라 등으로도, 발목으로도 얘기를 한다.

그런 그녀가 국수 그릇을 들고 시장을 걸을 때, 비좁은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갈 때, 동네 어귀에서 양조위를 만날 때 흐르던 첼로의 굵은 떨림은 그녀의 모습에서 묻어나는 쓸쓸함을 한층 강화시킨다. 악기와 화면과 내 감정의 vibration이 일치하는 듯한 느낌.

지금이야 더 이상 그런 느낌을 받기 어렵지만, 아름다운 첼로의 선율만으로도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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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문한 책들

 

-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최근 환경이나 삶의 질과 속도에 대한 문제들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듯 하다. 삶의 질과 속도에 관한한, 나는 조금 덜 풍족하면서 조금 더 여유로운 걸 선호하는 편이다. 돈이 많은 것 보다는 시간이 많은 편이 훨씬 행복하다. 그러나 환경 문제를 고려하기엔 지나치게 편리한 걸 추구한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몸에 익어버린 습성이 쉽게 바뀔리 만무다. 하지만 자꾸 문제 의식을 가지게 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굶주리는 세계, 프랜시스 무어 라페 외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늘 한다. 누구는 음식이 남아서 버리고, 누구는 굶어죽기도 하고. 과연 해결 방법은 뭘까? 이 책에는 어느 정도의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을까?

 

- 환상의 책, 폴 오스터

폴 오스터,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가리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모두 본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본 <폐허의 도시>는 솔직히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 건 어떨까? 주문한 책들 중 아마 가장 먼저 손이 나갈 작품.

 

- 십시일反, 박재동 외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없는 세상> 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정말 오랫만에 만나는 이성복의 시들.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하는 열 몇권의 시집 가운데 최승자와 더불어 가장 많은 권수를 자랑하는 이성복의 시집들. 그러나 이제 이성복의 승이다.

 

- 아주 특별한 관계, 정은미

알라딘에서 상품권이 생겼다는 걸 안 순간, 친구는 자기에게 책 한권 선물하라며 졸랐다. 음, 내가 보고픈 책 사기에도 모자라는구만. 그래도 이 책은 나 역시 고려하던 거라 흔쾌히 사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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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구입한 헌책들

- 잃어버린 낙원, 헨리 밀러

- 검은 봄, 헨리 밀러

- 유리병 속에 갇힌 세상, 실비아 플라스

- 아버지의 자리, 아니 에르노

- 낯선자, 페터 한트케

- 파스쿠알 두아르테의 가족, 카밀로 호세 셀라

- 마사 퀘스트, D. 레싱

 

전혀 읽어보지 않은 작가들이다.

작품이 괜찮을지 어떨지 감 잡기도 어려우나, 대부분 익히 이름을 들어본 작가들인데다가, 절판된 책들이고, 무엇보다 7권에 20,000원 이라는 가격 때문에 선뜻 사버렸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책 자체에 더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을 읽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재미있는 책이라는 사실이다. 누구든 한번은 겪었을 법한 어린 시절의 자잘한 일화들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일화에 덧붙여진 지은이의 해석에도 크게 공감이 간다. 대한민국의 남자들, 그리고 여자들은 한번씩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일단 주변인에 대한 추천 도서 1순위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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