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터넷 서핑 중에 우연히 이상은의 <삼도천>을 듣고는 거의 넋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몇 번을 반복해 들은 후, 이미 나는 이상은의 음악에 대한 광팬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CD를 사기에는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때였다. 예전에 나온 CD들은 이미 절판된지 오래요, 재발매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인터넷에서 다운 받는 것이었다. (뭐 음악 파일 다운 받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CD는 구입할 수 없고, 듣고는 싶고, 방법이 없다.) 다행히 그의 앨범을 보유한 사람들을 가끔 찾을 수 있었고, 몇 달에 걸친 작업 끝에 <공무도하가> <외롭고 웃긴 가게> <Lee-Tzsche> <Asian Prescription> 등의 앨범을 완벽하게 저장할 수 있었다. 삼도천을 처음 들은 이후 근 1년 반 이상,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이상은의 음악을 들었다. (틀어놓고 있었다, 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나는 그의 음악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 동안에 내게 다른 음악이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이상은의 목소리가 집에서 사라졌다. 좀 지겨웠기 때문인지, Rock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다. Rock이라는 워낙 방대한 장르의 음악을 듣다 보니, 다른 데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설령 이전에 미쳐있었던 이상은 일지라도. 어쨌거나 그 이후로 그는 내 관심권에서 멀어졌고, 언젠가 친구가 재발매된 <공무도하가>를 샀다고 자랑할 때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를 다시 듣게 된 건, 선배의 말 때문이었다. 이상은의 신보를 들어봤냐고, 아무래도 그가 연애를 하는 것 같다고, 정확히 표현하자면 ‘남자가 생긴 게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구입하게 된 이상은의 앨범이 11집 <신비체험>이다. <신비체험>은 전작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상은을 현재의 ‘대가’ 자리에 올려놓은 건 6집 <공무도하가>와 7집 <외롭고 웃긴 가게>다. 동양적 정서와 보헤미안의 감성을, 그만의 수수한 목소리로 하나씩 풀어놓는데, 그 울림이 상당히 깊고도 진하다. 홀짝거리는 술잔을 따라 조금씩 취해 가듯, 가늘고 가는 빗줄기에 시나브로 젖어가듯, 그의 음악은 사람을 물들인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9집 <Asian Prescription>까지 고스란히 이어지다 보니(봉자 OST도 마찬가지다), 그의 감수성이 오히려 그를 속박하는 듯 보였다. 그가 쓰는 가사는, 갈 곳 몰라 헤매는 그의 자의식이 지나치게 투영되어 있고, 반복되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연주도 결국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담다디>의 아이돌 스타에서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으로(2~5집), 다시 동양적 정서를 깊이 있게 표현해 내는 아티스트로(6~9집) 변신을 했지만, 계속 이 길만 고집한다면, 최승자처럼 되리라는 건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고맙게도 이상은은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10집 <Endless Lay>에서 살짝 방향 전환을 시도하더니, <신비체험>에 이르러서는 전혀 다른 색깔을 내고 있다. 밝고 상쾌하다. 경쾌한 사운드, 소박한 감성이 표현된 노랫말, 무겁지 않은 목소리, 그 모든 것이, 그가 나이가 들었음을, 그저 나이만 먹은 것이 아니라, 나이듦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따뜻해졌음을 보여준다. 열반의 경지에 오르고야 말겠다고 부득부득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옆에서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 인간미가 담뿍 느껴진다. (그의 변신을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예전에 그는 다시는 담다디를 부르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러나 이제는, 관객들이 좋아한다면 부르겠다,로 바뀌었다.)
<외롭고 웃긴 가게>를 주문했다. 2년 이상 한 번도 듣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들으면 그의 음악을 좀 더 편안하게 느끼고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더 이상은 20대 중반의 방황하는 청춘이 아니니까 말이다. 요즘 이상은은 홍대 앞 클럽들을 돌며 공연을 하고 있다. 다음달 공연에는 꼭, 반드시 가 보리라. 삼십대 중반에 이른, 넉넉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