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 기간 읽은 책들.
체홉 단편선은 진작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단편의 특성상 하나씩 쉬엄쉬엄 읽다보니 시간이 좀 걸렸다. <관리의 죽음>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러시아 관리의 모습에 웃기 시작하여 읽는 내내 꽤 즐거웠다. 지난번 대학 동창들을 만났을 때, 한 녀석에게 다른 놈들이 전형적인 러시아 관리같다고 놀렸던 일이 기억난다. 러시아 소설이나 희곡을 읽다보면 관리들은 대개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한쪽은 소심하고 사소한 일에 안절부절 못하며 윗사람에게 굽신대는, 농노 근성이 몸에 박힌 하급 관리이다. 고급 관리쪽은 거만함이 온몸에 배어있는데다 융통성 없고 고집이 세며 아랫사람을 무시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다. 짜르(황제)의 통치 아래에서 관리란 혹은 정부란 늘 그런 존재로 러시아인들에게 비춰졌기 때문일게다. 어쨌거나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생각난김에 고골의 단편집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인권, 환경, 복지 등 우리 사회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다. 내 경우, 모든 문제에 조금씩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건 결국 어디에도 관심없다는 말과 동의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이란 고작 관련 서적을 몇 권 읽고,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좀 더 생각있는 척 하는 것 뿐이니까 말이다. 그 동안 살면서, 여자이기 때문에 사소한 불이익을 당한 경우가 있긴 했으나, 그다지 큰 문제는 겪지 못했다. 주변에도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여겨질만한 사례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관심있는 척 할 수 있다. 직접 나설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십시일반>을 읽으면서 한켠으로는 가슴이 답답했고, 다른 한켠으로는 과연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고민중이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좋은건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지난해부터의 화두다.
이성복의 시집은 내내 가방에 넣고 다닌다. 시간나면 펼쳐서 한 두개씩 읽곤 하는데, 역시 시는 내게 어렵다. 감수성이 별로 없는 모양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그걸 다시 확인하는건 역시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