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 피터팬

피터팬은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꿈이다. 아무 걱정없이, 무엇에도 책임질 필요없이, 언제까지나 즐겁고 행복한 동심으로 남아있고 싶은 바람. 중요한 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책임지고 그것에 대한 걱정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친구를 만들고, 결혼으로 가족을 이룬다. 이러한 관계들을 통해 인간은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배우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항상 좋은 감정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때로 상처받고, 원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고, 생활의 무게에 짓눌리기도 한다. 

피터팬에게 이것은 선택이다. 어른이 되어서, 힘들지만 세상과 어울려 살 것인가, 아니면 아무 구속없이 자유롭게, 그러나 외롭게 아이로 남을 것인가. 피터팬은 아이로 남을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외롭다.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알게 해 준 웬디는 어른이 될 것을 선언했고, 그와 함께 지냈던 길잃은 아이들은 웬디와 함께 가정의 따뜻함 속으로 돌아갈 것을 선택했다. 그의 영원한 적일 것처럼 보이던 후크마저 악어 뱃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네버랜드의 요정들뿐이다. 웬디와 사랑을 하면서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외로움을 택한 겁많은 아이.

그런 점에서 보자면, 웬디의 아버지가 용감하다는 어머니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웬디의 아버지는 소심한 은행가로 직장에서 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아이들에게도 그다지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한때는 꿈많은 젊은 시절이 있었을 거다. 그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서랍속에 넣어두고 가끔씩 꺼내보면서, 점점 더 닫기 힘들어지는 서랍을 애써 닫고 돌아서는, 남편이자 아버지이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일러준다. 서글프다.

아버지가 가족과 세상을 버리고 나선 모습이 바로 후크처럼 보인다. 영화에서는 제이슨 아이삭스가 아버지와 후크역을 동시에 맡아서 놀라울만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쨌거나 후크는 피터팬의 어른 버전이다. 그 역시 무엇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지만, 나이가 들었고 몸서리처지게 외롭다. 그래서 그는 피터팬과의 '관계'에 집착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인물은 웬디이다. 소녀에서 여자로 거듭나려는 시기에 있는 웬디는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그런 그녀에게 어른이 될 필요가 없는 네버랜드는 멋진 장소이다. 그러나 피터팬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웬디는 결국 그것이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몫임을 깨닫는다. 어른이 되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 웬디는 이제 자신의 선택에 따라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유쾌하고 신나는 모험 장면이 많은데도 전체적으로 서글픈 느낌을 주는 영화다. 감독은 어른이 되는 것과 아이로 남는 것, 어느 쪽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각각 감당해야할 무게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현실의 우리가 아이로 남을 수 없다면,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웬디처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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