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1973. 서울 안국동의 한 골목길에서 연탄배달부가 힘겹게 수레를 끌고 오는 것을 보고있자니, 그이는 쉬려고 가장자리로 수레를 댔다. 첫번째 사진─왼쪽의 담 있는 곳은 지금의 연합통신 자리이고 오른쪽 차 옆은 일본대사관 정문께이다─은 삼십오 밀리 렌즈로, 나머지 것은 같은 자리에서 이백 밀리 렌즈로 찍었다. 두번째 사진의 잘려 나간 손가락은 찍을 때는 보지 못했다. 이 네거티브를 확대기로 비춰 보다가 그것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사하, 부산, 1974. 한 주물공장에서 '시다'로 일하던 아이. 새참으로 국수를 먹고 난 뒤에 손 등으로 입 주위를 닦은 자국이 이처럼 되는 환경이었다. 열 세살 먹은 이 아이의 일당은 이백이십 원, 여기에 실리지 않은, 다른 사진에 나오는 좀더 큰 열 네살 먹은 아이는 이백사십 원이라고 오래된 메모에 적혀 있다.

수분리, 장수면, 장수군, 전라북도, 1973. 개가 화면 밖으로 빠져 나갔어도 사진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재수가 좋았다. 빠져 나가기 전에 누를 수 있었으므로.

수분리, 장수면, 장수군, 전라북도, 1973. 요즈음 수분리에 가 보니 알아볼 수 없게 바뀌어 있었다. 이 아이들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내가 그렇게 되었듯이.


용대리, 북면, 인제군, 강원도, 1977. ‥·.

하면옥치, 양양군, 강원도, 1999.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