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지 한참 되었다. 리뷰를 절반쯤 쓰다 팽개쳐 두었는데, 오늘 생각나서 조금 정리해 올린다.


 

 

사람이 있다. 이들의 삶은 모두 고달파 보인다. (베니치오 토로) 어려서부터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다 2 전에야 마음을 잡았다. 이제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하느님이다. 그분의 뜻에 따라,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뺨마저 내밀며 살아가고자 한다. 설령 아내가, 예전의 모습이 당신답고 좋아,라고 쏟아부어도 그런 망나니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지우려고 한다.

 

크리스티나(나오미 와츠) 남편과 딸과 행복하지만 아직 약물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약물 중독자 모임에 나가면서 자신의 행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자각하려고 애쓴다.

 

( ) 아내를 버려두고 여자 여자를 전전했다. 그러다 심장병에 걸리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야 아내에게 돌아왔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받아주었고,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겠다고 한다. 그로서는 내키지 않지만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자 한다.

 


 

삶을 시작한 사람과 삶의 끝으로 다가가는 사람. 이들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불의의 사고였다. 길가로 갑자기 뛰어든 크리스티나의 아이들과 남편,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 . 크리스티나는 남편의 심장을 기증하고, 심장은 폴에게 이식된다.

하느님의 뜻으로 살고자 내게 주어진 시련은 하나님의 의지일까, 단순한 사고일까. 머리카락 올의 떨림조차 아는 당신께서 사고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가. 하나님은 나를 내치려는 걸까.

 

이제야 제대로 엄마와 아내 노릇을 하려고 했는데, 어째서 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을까. 삶의 의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

 

앞까지 다가왔던 죽음이 등을 돌려 가버렸다. 내게 주어진 새로운 생명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싶다. 그것이 삶의 이유다.

 

삶은 계속된다 대사가 나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자에게 삶은 계속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돌이킬 없는 죄를 지었어도 내게 주어진 삶은 아랑곳없이 앞에 놓여 있다. 어쩌면 그것이 끔찍할지 모른다.

 

21그램은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 줄어드는 무게라고 한다. 어느 경우에도 예외는 없단다. , 크리스티나, 폴처럼, 흠집이 사람들에게도 동일하다. 삶과 죽음의 무게가 어느 누구에겐들 무겁거나 가벼워질 있으랴.

 


 

감독은 전혀 친절하지 않다. 사람의 이야기는 토막토막 단위로 뒤죽박죽 섞여있다. 교회에서 아이와 얘기하는 , 아내와 통화하는 크리스티나의 남편, 폴과 친구들의 식사, 약물을 복용하는 크리스티나, 잭의 생일 파티, 크리스티나를 쫓아다니는 , 침대에 누워있는 처음 얼마간은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이런 구성의 장점은 짤막한 장면 안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극대화되어 드러난다는 점이다. 신경을 화면에 집중하다 보니 배우들이 보여주는 미세한 감정의 떨림조차도 확연하게 느낄 있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는 뭐라 말할 없이 훌륭하다. 주인공 명은 물론이거니와 결국 남편에게 버림받는 폴의 아내와, 잭을 포기하지 못하는 잭의 아내 역의 배우들도 이상을 바랄 없을 정도다.

확실히 추천할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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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11-1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뎌...리뷰를 쓰셨군요! 그래요...확실히 추천할 만한 영화입니다. 세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고. 저는 '예외는 없다' 이 부분에 확실히 충격받았습니다. 사람이 그 무엇앞에서도 평등할 수 밖에 없음을 아주 간명한 말투로 너무나 인상적이게 정리하고 있으니까요. 다시 한번 보고 싶슴다. 다만 너무 우울할 때 보지는 않으려구요....

urblue 2004-11-1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되었는데도 그 장면장면들이 눈에 선합니다.

저도 나중에 비됴로 다시 보려구요.

로드무비 2004-11-17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셨구랴.

특히 나오미 와츠의 연기가 기대되네요.

urblue 2004-11-1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베니치오 델 토로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도 종로에 있는 극장에서 하던데, 극장에서 보심이 어떨런지요? ^^

비연 2004-11-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니치오 델 토로는 내년에 'Che'라는 영화에 출연하죠.

그 유명한 체 게바라로 나온다고 하는데...좀 닮은 것 같죠? ^^

urblue 2004-11-1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반가운 소식이네요.

닮긴 했는데, 느끼해 보일까봐 조금 걱정입니다. ^^;
 


 

영화는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아직 아닌, 의대 졸업을 앞둔 23살의 청년 에르네스토 게바라이다. 에르네스토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알베르토와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계획한다. 여행의 목적은? 세상을 알고 싶다. 계획은? 대책없다. 칠레와 페루를 거쳐 대륙의 베네수엘라에서 여자들과 와인을 마시겠다는 치기어린 꿈을 .

 

과연 움직이기나 할까 싶은 고물 오토바이 포데로사에 짐을 잔뜩 싣고 나란히 앉은 그들은 호기롭다. 포데로사는 연기를 뿜으며 가르릉거리지만 경쾌한 출발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흙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는 포데로사 뒤로 라틴 아메리카의 널따란 평원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그들은 기세좋게 달린다.

 

영화의 초반은 유쾌하다. 알베르토의 허풍과 철부지 같은 투정은 유머러스하고, 지나치게 정직해서 문제라는 에르네스토와의 가벼운 마찰과 화해도 사랑스럽다. 개울에 쳐박히고, 바람에 텐트가 날아가고, 눈밭에 묻히기도 하지만, 역시 젊은 날의 고생이니 만큼 대수롭지 않다. 약간의 사기를 치면서 잠자리와 먹을 것을 구하고, 매력적인 여인들에게 눈길을 던지는 청년의 여정은 그렇게 마냥 이어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골골하던 포데로사는 기어코 이들 앞에서 쓰러져버리고, 이제 이들은 걸어서 여행을 계속한다.


 

그때부터였을까,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경작하던 땅에서 예고없이 쫓겨난 농부, 이런 저런 이유로 세상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모여들어 비인간적 대우를 감수하며 일자리를 찾는 추끼까마따 광산, 스페인 침략의 역사가 눈에 보이는 잉카 유적지, 그곳에서 하릴없이 굶주리는 원주민 여인들. 에르네스토의 눈동자가 변한다. 토착당을 만들어 원주민 사회를 개혁하자는 알베르토의 말에 에르네스토는 없는 혁명은 절대 성공 못해.’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맨손으로 환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시작한 빠블로 나환자촌에서의 3. 떠나기 전날, 에스네스토의 24번째 생일, 그는 환자들과 생일 파티를 하겠다며 한밤에 강을 헤엄쳐 건넌다. 그렇게, 그는 환자촌과 의료진의 숙소를 가르고 있는 강이라는 차별에 항거한다.

 


 

영화는 비장미 넘치는 영웅들을 말하지 않는다. 호기심 많고 순진한 청년이 위에서 보내는 나날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따라갈 뿐이다. 혁명가로 변신하는 극적인 계기도 없고 커다란 사건도 없다. 그러나, 세상에 드리워진 차별을 인식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에 눈떠 가는 조용한 내적 혁명은 분명하게 느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한때 그의 발이 아르헨티나 땅을 밟고 있었던 시절을 떠나보냈다. 이 기록을 재구성하고 다듬어내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적어도 과거의 나는 아니다."

 

위대한 혁명가 게바라를 탄생시킨 젊은 날의 여행에의 동참. 체를 가슴 속에 느낄 있는 따뜻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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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14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은, 청춘은 많은 것을 저지르게 하는 것 같아요. 순수함을 내포하여서 더욱 빛나기도 하지요... 스틸컷만 봐도 좋아요. 자연은 위대한 영화 셋트라니깐...ㅎㅎ

IshaGreen 2004-11-15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체게바라가 포데로사를 타고 떠난 라틴 여행기를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아서
이 영화 보고싶었는데....친구들이 체게바라를 모르는 사람도 허다하답니다..흙...-_ㅠ

혼자라도 보러 갈 생각입니다....ㅡㅜ

urblue 2004-11-15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정말이지 라틴 아메리카의 풍광은, 낯설면서도 놀랍습니다. 저 매력적인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보다 뒷편의 풍경에 눈길이 더 가던걸요.



우르바시님, 좋은 영화는 원래 혼자 보는 거랍니다. ^^

Laika 2004-11-1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남미의 멋진 자연이 펼쳐지는 영화더군요... 여행이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수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우르바시님 말처럼 체게바라를 모르는 사람이 많더군요..오늘 아침 영어수업에서 이 영화를 얘기했더니 아무도 모르더군요.

urblue 2004-11-1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반갑습니다. 그래도 극장엔 제법 사람이 많더군요. 썰렁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체 게바라에 대해선, 아마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겠지요. 같이 영화 본 제 친구만 해도, '체 게바라'란 이름외엔 전혀 모르던걸요.

로드무비 2004-11-1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멋진 영화 보셨네요.

저도 꼭 보고 싶게 리뷰를 쓰셨구만요.

chika 2004-11-15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보고 싶어요!!!

글고... 저, 받았답니다 ^^

urblue 2004-11-15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뭘로 받으셨나요? 제가 궁금합니다. ^^

숨은아이 2004-11-15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에서 소개된 걸 봤을 땐 그저 그랬는데, 블루님 글 보니 보러 가야겠어요.

urblue 2004-11-16 0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만든 영화다 아니다 따지기는 애초에 무리인 것 같습니다, 제게는.

하여간 꽤 재미있어요. 풍경도 멋지고, 배우도 그렇고.

비연 2004-11-2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봤는데(리뷰도 썼구요..ㅋㅋ) 참 좋은 영화였던 것 같아요.

 

알베르토 그라나도 인터뷰

“마치 내가 지금 막 그 오토바이에서 내린 것만 같다”


올해로 여든세살인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가 영화화되는 데 있어 결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여정에서 남은 이 한 사람은, 월터 살레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호세 리베라가 4년 전 쿠바 아바나로 날아가 처음 만났을 때 살레스의 표현에 따르면 “놀라울 만큼 건강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한다.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그들의 여행이 왜 중요했는지, 그들의 미래에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를 살레스와 리베라에게 이해시켰다. 예전의 사람들과 예전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눈물이 난다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남미여행 동반자 알베르토 그라나도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당신과 게바라와의 여행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다소 놀랍다. 두 젊은이가 라틴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물론 에르네스토와 내가 우리의 신념에 따라 끊임없이 활동하고 살아왔다는 점은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우린 항상 우리가 해야 한다고 믿는 대로 행하고 살았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이 영화가 왜 만들어져야 하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결코 기대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게바라와 함께 거쳐간 장소들을 되돌아보니 어떠한가.
(웃음) 기쁘다. 그리고 내 삶에 대해 감사한다. 삶이 나에게 내려준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한다.

이 영화에서 오토바이(영화에서는 게바라와 그라나도가 여행 당시 탄 것과 동일한 종류의 오토바이를 사용한다)를 보았을 때 어땠는지.
(웃음) 물론 감동받았다. 정말 사랑스러웠다. 우리가 오토바이와 이별하는 장면을 감독이 정말 잘 찍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지금 막 그 오토바이를 뒤로 하고 떠난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그 가여운 오토바이를 천으로 덮어 씌우고 떠날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영화를 보다가 두 장면에서 울었다. 하나는 오토바이와 이별할 때였고, 또 하나는 에르네스토가 아마존 강을 건널 때였다.

당신과 게바라의 여행이 이 영화 속 여행과 같거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리의 여행이 상징하는 것은 나와 체, 나와 쿠바혁명의 관계이다. 난 평생 그 여행을 기억했다. 비행기나 오토바이를 볼 때마다 그때가 떠오른다. 월터 살레스는 실제로 50년대에 내가 어땠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이해한 듯하다.

실제 여행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물론이다. 난 그 여행에서 많은 우연들을 경험했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장소들을 보면서 온갖 사소한 기억들과 내가 겪은 모험과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게다가 체 게바라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그의 연설과 정치적 삶만 알 게 아니라 그의 배경도 알 필요가 있다. 그가 어떻게 자랐는지, 그의 여행이 어떠했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모든 것들에 힘입어 나는 아직도 그 여행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많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산 파블로의 나환자들이 우리를 배웅해줄 때였다.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들은 보트를 타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는 곳으로 건너왔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환자들은 우리를 위해 음악을 연주했고, 작별의 인사를 건넸고,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보통 사람들처럼 대해줬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결코 그걸 잊을 수 없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린 너무 감동을 받아서 할말을 잃고 있었다. 조명이 나빠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게 유일한 후회다.

아직도 오토바이를 탈수 있나.
이제는 탈 수 없다. 일전에 가엘이 나를 오토바이에 태운 적이 있다. 같이 운전을 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운전사는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타기에 여든 살은 너무 늙은 나이다. (웃음)

※이 인터뷰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기자회견 인터뷰와 해외 인터뷰 기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월터 살레스 감독 현지 인터뷰

“이 영화는 마치 재즈처럼 각본을 바탕으로 즉흥 연출되었다”


기대했던 대로, 월터 살레스 감독은 온몸에 선한 인상을 풍기며 토론토 파크하야트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섰다. 시종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밝은 태도를 천성으로 타고났는지, 작고 갸름한 얼굴에 보기 좋게 잡힌 주름 자리가 아주 오래돼 보였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나는 브라질(Brasil)이란 단어에 결코 s 대신 z를 쓰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던 살레스는, 기본적으로 모든 질문에 성실히 응하면서도, 영화 자체보다는 남미 문화에 관련된 질문에 더 많은 열성을 보인 남미 감독이었다.

영화는 어느 정도 원작에 충실했으며, 어떤 부분에서 극적인 변형을 가했는가.
우선 각본은 세 가지 원작에 충실하게 쓰여졌다.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쓴 <나의 첫 대 여행>(Mi Primer Gran Viaje)과 <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즈-남미여행에 관한 기록>, 알베르토 그라나도의 여행일지인 <체와 함께한 남미여행> 등이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책은 정말 다르다. 에르네스토의 책은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 쓰여졌기 때문에 더 다듬어져 있고, 젊은 이상주의자로서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남미대륙을 실제로 발견해가는 과정에 변하는 자신을 보여준다. 반면 알베르토의 책은 바로 그 자리에서 쓰여진 것이다. 훨씬 생동감이 있고 당시에 일어났던 일을 훨씬 섬세하게 묘사한다. 예를 들어 에르네스토가 아마존 강을 건너는 대목에 대해 에르네스토 자신은 한 단락으로 쓰고 있지만 알베르토는 아주 길게 그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속에 가미된 극적인 설정들은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알아차리기 어렵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 세권의 책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는 부분적으로 이 영화가 즉흥 연출로 만들어질 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나. 몰랐다.

왜 말해주지 않았나.
기대하게 만들려고 그랬다. (웃음) 일단 그들은 준비가 잘돼 있었다. 시나리오 리허설뿐 아니라 영화에 필요한 남미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준비를 거쳤다. 50년대의 아르헨티나 역사와 영화, 히트곡들에 대해, 50년대의 칠레와 페루에 대해, 그리고 잉카 제국에 대해 미리 세미나도 거쳤다. 자신들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대륙에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들은 상황에 더 잘 맞춰갔다. 그렇게 길을 따라 즉흥성을 발휘하려면 기본적으로 각본이 아주 좋아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각본의 구조가 기본적으로 탄탄해야 그것을 바탕으로 영화를 확대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재즈와 비슷하다. 재즈는 기본적으로 핵심이 되는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주제의 주위를 돌면서 얼마든지 변형을 가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마지막엔 항상 핵심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각본과 영화의 즉흥성과의 관계다.

영화는 두 사람이 무작정 짐을 싸서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주인공들에 대해 사전 설명을 덧붙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게 바로 보통 전기를 다룰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그런 식의 의도를 담고 있지 않다. 단순히 한 인물의 어떤 과거를 제시함으로써 그가 나중에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를 이해시키려는 게 목적이다. 인물에 대한 설명은 주어진 디테일을 갖고 알아가야 하는 게 이 영화가 제시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에르네스토가 사는 집이나 그의 부모님이 입고 있는 옷을 살펴보면 에르네스토가 그럴듯한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그런 사회적 지위를 넘어서고 싶어하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 방식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는 않겠지만 나에겐 흥미롭다.

음악이 정말 아름답다.
아르헨티나 영화음악가 구스타보 산토라차가 만들었다. 그는 지난 몇년 동안 직접 남미를 두루 다니면서 음악을 조사하고 수집, 보관해온 사람이다. 그는 남미 악기의 거의 대부분을 연주할 줄 안다. 이 영화음악에 쓰인 악기도 80%는 그가 직접 연주한 것이다. 다 비슷하게 들려도 남미 음악은 국경 하나만 넘으면 악기가 달라진다. 따라서 영화음악도 여정을 따라 악기를 달리한다. 산토라차는 정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음악가다.

로버트 레드퍼드가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알고 있다. 게바라의 일생 중에서도 하필 이 여행기를 그가 제안한 건가.
우선 레드퍼드는 굉장히 정치적인 사람이다. 남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선댄스 인스티튜트를 통해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쿠바 등 남미 국가들에 관한 세미나도 열었을 만큼 몇년간 그 분야에 깊이 관여해왔다. 레드퍼드는 남미대륙에 관해 우리 남미인들만큼 열정을 갖고 있다. 그는 이 다이어리가 영화화될 거라고 생각한 동시에 영화화돼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는 이 영화가 남미 스페인어와 남미 출신 배우들로 만들어진다는 점에도 처음부터 동의했다. 이 영화를 할리우드 배우들이 찍는다고 상상해보라. (웃음) 우린 모두 낙담했을 거다.

토론토=인터뷰 박혜명 tuna@cine21.com

출처 : 씨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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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14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신다더니...보셨군요! 조제... 그 영화를 놓쳐서 무지 아쉬워요 ㅠㅠ

urblue 2004-11-14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봤지요. ^^ 저도 조제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영 그렇더라구요.

숨은아이 2004-12-02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퍼가요. ^^
 


 

시골에서 빈털터리로 상경해 사진작가로 자리잡은 마흐무트.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타르코프스키 같은 사진을 찍고 싶다 했지만, 이젠 타일 공장의 광고 사진에 만족하면서 여자들이나 찾는 중년의 사내. 고향에서 올라온 친척(유스프) 마냥 기다리게 하고 (잊었다 말하지만, 진짜 잊고 있었을까. 잊었다면, 친척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냄새나는 유스프의 신발에 신경질을 부리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는 하며 포르노 테잎을 돌리고, 신원 보증 얘기를 꺼내는 유스프 앞에서 딴청을 부리고, 전화를 엿듣고, 좋은 사진이 나올만한 장소를 귀찮다고 지나치는 사내는 어디 군데 예뻐 구석이 없다. 일자리를 부탁하는 유스프에게 그가 소리친다. ‘ 여관비도 없이 이스탄불에 와서 혼자 힘으로 이만큼 냈어. 자존심을 지키는 쉬운 알아. 뭐야, 남에게 기댈 생각이나 하고.’ 그는 과연,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모든 이루었을까. ‘내가 너만할 …’ 어쩌구 하는 소리들을 확인할 없다는 뻔하다. 이혼을 앞두고 임신한 아내에게 아마도 낙태를 강요했을 남자, 그러면서도 아내에게 결코 사과의 마디 건네지 않는 그가 말하는 자존심이라는 도통 신뢰할 수가 없다.

 

한편 유스프는, 불황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고, 집에서는 돈이 없어 어머니가 치과에도 가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정신이 없어 보인다. 여행을 하면서 돈도 벌겠다며 뱃사람이 되겠다고 한다. ‘바다에는 불황이 없잖아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다. 여기저기 선박 회사를 기웃거리지만 정말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느긋한데다, 눈에 띄는 여자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닌다. 마흐무트가 집을 비운 맥주며 안주 부스러기며 담배 꽁초로 집안을 더럽히고도 미안한 모르고, 약속한 일주일이 하루 이틀 지나자 오히려 낸들 어쩌냐 식의 뻔뻔함을 드러낸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팅기는 하다.

 

이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상당히 건조하다. 조금도 포장하지 않고 온갖 구차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데, 알량한 자존심과 무사태평의 안일함으로 무장한 마흐무트와 유스프를 마냥 미워하거나 한심스러워 수가 없다. 사는 별거냐, 비슷한 . ‘ 너와는 달랐어.’라고 변명하는 마흐무트에게서 유스프의 모습이 보이고, TV 앞에 널브러져 있거나 여자 뒤를 쫓는 유스프에게서 마흐무트를 본다. 어쩌면 그들이 가졌을, 그러나 현실의 장벽 앞에 꺾여버렸을지 모를 꿈이라는 내게도 유효한 얘기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혀를 차기보다는 아릿함에 가벼운 한숨을 내쉬게 된다.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이스탄불의 풍경이 신산하다. 눈밭에서 구르는 연인들의 모습은, 그걸 바라보는 유스프의 시선 마냥 낯설기만 하고, 높은 파도가 치는 해안은 을씨년스럽다. 벤치에 앉아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마흐무트들, 홀로 거리를 방황하는 유스프들이 고독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 눈에 비친 이스탄불이다. 하기야, 어딘들 다를까만은.

 

* 어째 요즘은 영화를 보고 나서 체념조의 말만 늘어놓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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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1-1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곱씹게 하는 영화일 듯하니 좋은 영화는 틀림없을 것 같은데, 왠지 오늘처럼 우울한 날엔 더 쓸쓸해질 것 같은 영화 같아요. 그런데도 이 영화 보고 싶네요. ^^

urblue 2004-11-11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시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 볼 때 관객이 스무 명을 넘지 않더군요. 그래도 뭐 제법 오래 할 것 같긴 하던데요. 시간 한 번 내 보세요. ^^

바람구두 2004-11-1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화면...

urblue 2004-11-22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르코프스키는, <희생> 보다가 잠든 기억 밖에 없습니다. -_-;

황량함으로 치자면, 유스프도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전 계속 그런 생각이 들더이다, 마흐무트와 유스프가 결국은 한 사람인 것 같다는.
 
 전출처 : 로드무비 > <우작> 감독 인터뷰

UZAK     2003년 제56회 칸 그랑프리, 남우주연상 <우작> 세일란 감독과 문홍의 단독 인터뷰

 

 

 

                                                                         일시: 2004년 5월 21일 / 장소: 칸 영화제 터키본부

    

    2003 칸 영화제 그랑프리, 남우주연상 수상작 <우작>의 “누리 빌게 세일란”과 “문홍식”의 단독 인터뷰

 

 

칸 영화제 “터키 영화본부”에서 만난 세일란(Nuri Bilge Ceylan)과 문홍식은 이미 의형제 관계이며 작년 칸의 분위기를 상기하는 대화에서부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세일란

Brother!...


홍식

A big tree in my heart, my big brother Ceylan...


세일란

동생 영화는 많이 봤나?

         

 

홍식

아뇨..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제 도착했거든요... 그보다 형님은 심사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세일란 감독은 2004 제57회 칸 영화제 “씨네파운데이션”부문 심사위원이었다.)


세일란

오늘 점심때까지 모든 심사를 끝냈어.

그 보다 한국에서 장편 두 편이 경쟁부문에 올랐더군, 축하해..


홍식

네! 그 분들은 한국에서도 꾀 주목받는 감독들이죠.


세일란

동생 <티켓버스> 진행은 잘돼가나?

“공리"(Gong-LI) 하고의 일 말야?


홍식

네!.. "공리"가 시나리오와 배역에 강한 의욕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이번 칸에 온 “왕가위” 감독의 <2046> 촬영 때문에 많이 바빠 서로간의 깊이 있는 대화는 "칸" 이후에 이뤄질 것 같습니다. 

문홍식 감독의 차기작 <티켓버스>에 출연할 "공리"(우측). 캐릭터와 일정등에 대해 논의하고있다.

 

 

세일란

난  아직 시나리오는 읽지 않았지만 <티켓버스>의 이미지보드를 보면 벌써 한 컷 한 컷 영화를 보는 듯 꾀 뛰어난 비주얼의 영상이 될 것 같고, 포스터 하나만 봐도 뭔가 충격적인 사건을 담고 있는 영화 일것 같은 느낌이들어.. 미쟝센이 뛰어난 영화가 될 것 같아...

 

                                                          (씨네마스코프 125분 / <티켓버스> 129씬 320컷 중에서)

홍식

하하.. 그렇게 봐주시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보드는 형님께 드리는 겁니다.

 

세일란

오! 고마워. 이 기획서도 하나의 예술작품이야.. 이 <티켓버스>타이틀도 붓으로 직접 섰다고 했지. 한글 <우작> 글씨도 그렇고? 참 멋있고 힘있는 필체야... 꼼꼼하게 준비가 잘 됐어.

 

홍식

하하... 글쎄요...

 

세일란

그럼 투자 진행은 어때?


홍식

한국에선 아직 투자 진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월부터 만나온 중국에서는 15~20%정도 투자할 의사를 밝혔고, 어제 만난 유럽  투자사는 투자 지분과 유럽 전 배급권에 관한 대화를 했고, 순 제작비의 50%까지 투자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구체적인 협상은 낼모레 다시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세일란

잘 됐군..

동생은 나랑은 스타일이 달라. 상업적인 색깔을 놓치지 않으려 해.

난 가급적 적은 인원과 신인 배우나 내 주변 사람들을 영화에 출연 시키려 하지.

사람을 많이 대리고 작업 하는게 싫어.


홍식

상업 배우를 쓰지 않는 구체적인 이유와 앞으로도 상업 배우를 쓸 생각은 없나요?


세일란

상업배우를 쓸 생각은 전혀 없어. 왜냐하면 상업배우를 쓰므로 인해 영화하는데 있어서 뭔가를 죽인다고 생각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감독으로써 새로움을 만들 수 없기도 하지. 그러나 신인은 쉽고, 맑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유명 배우와 작업을하면 장점도 많겠지만 많은 부분을 배우에게 맞춰줘야 하거든, 밥 먹는 시간에서부터 이런 저런 모든 것을 말야.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과 작업을 해보면 모두가 촬영을 우선적으로 협조하거든...


홍식

하지만 초기에 신인배우들과 작업을 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요?


세일란

오히려 첫 번째 영화를 할 때는 내가 상업배우를 안 쓰므로 인해서 힘들었다기 보다 상업배우와 작업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내 작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쓰지 않았어. 그러나 지금은 상업배우를 만난다고 해도 두려움은 없을 것 같아.


홍식

형은 그 동안 모든 작품을 직접 각본, 감독, 촬영, 편집, 제작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런가요?


세일란

하하하.. 그래 이번엔 내가 출연까지 할 생각이야.

그 간 내 영화는 모두 내 얘기에서 발전했고, 이번에도 내 얘기에서 영화가 시작될 거야.


홍식

그럼 촬영은 누가 하나요?


세일란

아마 부분적으론 내가 또 카메라를 잡겠지만 다른 촬영감독에게 맡겨야지.


홍식

시나리오는 나왔나요?


세일란

아냐! 아직 구상중이야..


홍식

이번에도 기대 하겠습니다.

두서없는 말입니다만, 칸의 열기를 다시 느끼면서 작년 <우작>의 상영시기와 같기 때문에 작년의 느낌이 되살아 날 것 같은데... 어떠세요?

 

     

           2003년 제56회 칸 영화제 대상 수상 장면 (우측 Nuri Bilge Ceylan "누리 빌게 세일란" 감독)

      

       2003년 제56회 칸 영화제 대상 수상 후 인터뷰 장면 (우측에서 두 번째가 "누리 빌게 세일란" 감독)

 

 

세일란

그렇게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빠.. 해야 할 일도 많고, 내 작품들을 팔기 위한 미팅도 많았어. 감독이 스스로 자기 영화를 파는 사람은 아마 유일하게 나 밖에 없을 거야.

왜냐하면 난 사업을 위해서도 알고 싶은 게 많거든...


홍식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만나게 된 게 아닐까요? 우리같이 영세한 회사에서 매이져 배급사와 거래를 했다면 아마 <우작>은 내가 수입하지 못 했을 겁니다...

절 믿고 모든 작품을 맡겨줘서 고맙습니다.


세일란

아냐! 오히려 나에게 믿음을 줘서 고맙지. 모두가 돈으로 영화를 저울질 했는데 동생은 달랐어. 하하하... 덕분에 우리의 형제애는 더 두터워 졌잖아. 난 동생을 믿어!....


홍식

고마워요 형!.. 언제나 내 가슴 속에 큰 나무 누리 빌게 세일란! 하하하...

현재 한국에 <우작> 개봉을 준비하고 있고, 사진전도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 관객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얘기는 없나요?


세일란

모두가 각자 정서가 다르고, 느끼는 가슴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뭐라 할 얘기는 없어.

한국에서도 내 영화가 개봉하게 된 점 기쁘게 생각할 뿐이지. 하하하...


홍식

한국에서 예술영화를, 특히 수입 예술영화를 개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도 주변에선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많죠.


세일란

동생은 영화계의 돈키호테다.. 잘 될 거야. 의지가 강한 사람이야!...


홍식

현재 많은 극장을 가지고 있는 배급사와 얘기 중인데 만약 그게 잘되면 좋겠지만, 혹시 어렵다면 서울 2개관 정도에서 상영을 할 계획이고, 이후 지방으로 순회 할 생각입니다.


세일란

그 방법도 좋을 것 같아.

힘든 일을 너무 어럽게 할 필요는 없어.

 

홍식

그리고 형님의 사진전에 대해서 주변사람들과 상의 했고, 사진을 본 사람들은 뛰어난 영상미에 다들 놀라워합니다. 또한 터키대사관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고 후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기자들은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제가 세일란의 전 작품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눈여겨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단순한 개봉으로 끝날게 아니라 <우작>을 비롯한 형의 모든 작품을 소개하고 특히 “세일란”이라는 감독을 부각 시키는 것이 나의 큰 임무입니다.

누리 빌게 세일란 감독의 한국초대 특별 사진전에 전시될 작품중에서. 2005년 4월 코엑스 전시 예정


세일란

동생의 그런 점이 날 감동 시키는 거야.

세계의 많은 배급자들과 거래를 했지만 다들 돈, 돈, 돈 타령이었어...


홍식

참 인사가 늦었지만 부인, 형수님께선 어떠신가요?

산달이 다가올 텐데?


세일란

지금 임신 8개월째라 몸이 무거워.


홍식

건강한 조카가 태어나길 빌겠습니다.


세일란

고마워!..


홍식

사딕은 얼마나 가까운 친굽니까?


세일란

사딕은 내 영화 작업의 많은 도움을 주는 친구야. 우린 특별히 사무실을 두고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방면에서 많은 일을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지.

 

홍식

사딕과 둘이서 영화사의 모든 살림을 같이 한다고 하는데 힘든 점은 없나요?


세일란

힘들지..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나 혼자 프로듀서 일에서부터 모든 걸 다 해왔기 때문에 큰 어려운 점은 없었어. 그러나 이제 일이 좀 커지고 해서 사무실도 차리고 직원도 뽑을 생각이야.


홍식

그 동안 그렇게 1인 체재로 작업을 해 왔다는 것이 참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세일란

다른 사람을 못 믿는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데... 나는 조명에 대한 아이디어도 있고 사진 작가였기 때문에 카메라도 다룰 줄 알고.. 하지만 제작은 안하려고 했는데 내 영화를 제작 해줄 영화사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해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다 할 줄 아는 거였고, 내가 모든 걸 하게 됐어. 하하하...


홍식

그 동안 영화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해 찍었나요?

점점 영화가 커져가는 걸 느낄 수 있는데 회사 자본으로 찍었는지 아니면 투자를 받았는지?


세일란

여태까지 내 영화는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모두 내 사비를 털어 제작했지. 그러나 다행히  첫 작품 <카사바>에서부터 상을 타며 다른 나라에 배급도 할 수 있었고, 거기서 얻어진 돈으로 <5월의 구름>을 찍었고 또 그 수익으로 <우작>을 찍었어.

모두 투자 없이 내 돈으로 영화를 찍은 것이지.. 그렇게 찍을 수 있어 다행이지 뭐!...

터키에서도 예술영화 시장은 힘들어.


홍식

어떻게 보면 단편<코자>에서부터 <카사바>, <클라우드 오브 메이>, <우작>까지 연관성 있는 작업형태인데... 다음 작품도 <우작>의 연계선상에 있는 작품인지 아니면 별개의 작업이 될 것인지?

(세일란 감독의 모든 작품은 한국내 (주)문필름코리아가 수입한 상태이며 배급할 계획이다).


세일란

내가 여태까지 영화를 해오면서 느낄 수 있는 건, 내 이야기,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작품 마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다음 작품도 나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혹 소재가 틀릴지는 몰라도 분명 <우작>의 연계선상에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아.


홍식

형수님, 부인이 <우작>에 출연했는데... 원래 배우였는지 아님 그냥 출연했는지?

(우작에서 이웃집 여자 “청소기를 고치려고 왔던 여자")

 

     (부인" 에민 세일란" 우측과 우측 끝, 키작은 남자 세일란 친구이자 경비로 나왔던 "사딕")

 

세일란

원래는 배우가 아니라 단편영화 감독이었어. 실은 다른 여배우를 쓰려고 연습까지 했었는데... 촬영도중 그 배우가 스케줄이 맞지 않아 아내가 출연하게 된 것이지.


홍식

영화에서는 얼굴이 가까이 보이지 않아 관객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실물은 참 미인이시다. 여느 배우 못지않게 말입니다. 하하하...


세일란

좀 다른 얘긴데.. 한국엔 터키 영화가 <욜>이후 두 번째로 소개될 영화라고 했지?

( “욜” 일마즈 귀니 감독 1982년 제35회 칸 그랑프리 수상작 )


홍식

그렇죠!


세일란

터키 영화가 국제적으로 발전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칸이나 그 밖에 영화제를 통해 우린 영화를 알릴 수밖에 없지. 나도 그래서 베를린과 칸을 통해서 내 작품을 소개 하고 있으며 터키의 영화를 알리고 있는 셈이지.

아마 이런 경우는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

이번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한국의 <올드보이>가 뭔가 하나 타긴 탈것 같다는 말들이 많아.


홍식

<올드보이>는 한국에서도 작품성과 상업적으로 두루 성공한 작품이었죠.

중복된 얘길 수도 있는데 형은 앞으로도 독자적인 독립영화 형태의 작업 방식을 고수하실 건가요?


세일란

아마 그럴 것 같아. 난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싫어. 20명만 넘어가도 짜증이 나. 난, 5명 정도로 일하는 게 가장 좋고, 나의 습관인진 모르겠는데 글을 쓰다 보면 자꾸 저예산 규모의 영화로 시나리오가 완성돼지.

 

홍식

<카사바>를 보면 굉장히 적은 스텝으로 일을 했는데 <우작>은 몇 명의 스텝으로 촬영을 했나요?


세일란

다섯 명의 스텝으로 완성했어.

 

 

홍식

참 대단합니다!

한국에서도 저예산 예술영화 감독들이 있는데 그 분들도 최소 스텝이 20명이 넘어가죠... 아무튼 <카사바>에서는 세 명의 스텝만으로 촬영하는 메이킹 화면을 봤는데 그 상황 속에서도 쫓기지 않고 여유 있는 촬영장 분위기가 참 부럽고 대단하게만 느껴졌었죠.

더 중요한 것은 그 화면 속에서 섬세한 연출력까지 느껴진다는 것이죠.

우리 사무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가끔 난 형의 메이킹 화면들을 보여줍니다. 그럼 모두가 하나 같이 놀랄 뿐 이었죠... 

35mm 필름 장편 영화에서 가능한 일이냐고 말입니다.


세일란

하하하... 요즘은 다들 편한 것만 찾아서 그래. 생각해 보면 옛날엔 카메라도 무거웠고 기능도 별로였지만 요즘은 카메라도 가볍고 기능도 훨씬 다양해졌어. 안 해봐서 그렇지 다 할 수 있다고 봐.


홍식

해외 인터뷰 기사를 보니 어느 영화제에서 탄 상금을 독립영화 학생 두 명에게 지원한 적이 있던데 참 반가운 기사였죠. 그래서 저도 형의 그 정신을 이어받아 사진전 판매 수익 전액을 한국의 독립영화 학생들을 위해 쓰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세일란

참 좋은 아이디어야.

모든 걸 동생에게 맡겼으니 영화나 사진전 모두 좋은 성과가 있길 빌겠어.

먼 타국에 나의 분신과 같이 느낄 수 있는 홍식... 파이팅!


홍식

아뇨! 아직은 그런 말을 듣기엔 부족함이 많아요.

개봉과 전시회 때 형을 한국에 꼭 초대하고 싶습니다.


세일란

뜻은 고맙지만 아마 못갈 거야. 왜냐면 다음 작품 준비를 위해 다닐 곳도 많고, 이런 저런 해야 할 일이 많아. 무엇보다 시나리오 작업 전이라 마음의 부담이 커.


홍식

저의 영화적 스승은 “장이모”와 “기타노 다케시” 입니다.

두 사람의 색깔은 많이 다르죠, 그러나 두 사람의 영화는 나에게 꾀 충동적으로 다가왔고, 내가 결정적으로 영화를 꿈꿀 수 있는 채찍을 가한 사람들이죠.


세일란

나도 “장이모”의 작품을 좋아 했어, 그런데 요즘은 무협을 많이 해서 싫어.


홍식

글쎄 저도 그런 점에선 같은 생각입니다. <귀주 이야기> 까지는 좋았는데.. 하지만 어찌 보면 연기자가 늘 새로움 모습을 꿈꾸듯이 감독도 새로운 영화 색깔을 그리려는 것이 아니까 싶어요. 

해외 기사를 보면 “체홉”이나 “타르코프스키”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영화의 큰 스승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세이란

“체홉” 같은 경우 나의 스승이라고 생각 하는데... 삶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하는가 그런 것을 많이 가르쳐주고, 표면적으로 나의 영화 속에서도 디테일한 면을 지켜보면 체홉과 관련된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지.

그리고 브레송 도스토프스키등을 예로 들 수 있지.


홍식

형! 얘길 하다보니 출출해 지는데 어디서 식사를 하시면 체홉 등에 관한 얘길 더 듣고 싶습니다.

 

세일란

그래 그럴까, 그럼 일어나지....

 

 

 

 

인터뷰 정리 /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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