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krinein/20010394631


과거사법을 비롯한 이른바 개혁법안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더니만 이제는 슬그머니 4월 국회로 넘어가고 있다. 역사의 명분과 정략의 계산이 그렇게 한참을 얽히고 섥히더니만. 그만하면 됐다는 듯. 할만큼 했다는 듯. 이제 그만하고 화합과 상생이 필요하다는 듯. 무엇하나 마무리짓지 않은 채 알리바이/면죄부만 남기고 지나가고 있다(기우이거나 성급한 오해일까. 그렇다면 좋으련만).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됐지 않았"냐는 말에,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피해자에게 먼저 용서를 강요하는 무례함에 단호하게 '아니야' 라고 말하는 영화가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반딧불영화제가 상영하는 이달의 인권영화,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2001년작 '피노체트 재판(The Case Pinoche)'이 그것.

피노체트는 1973년에 쿠데타로, 합법적인 선거에 의해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권을 전복하고 권좌에 오른 독재자. 17년의 재임기간 동안 1,102명이 실종(!)되었으며, 3,197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당했고, 100만명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1989년 선거 패배로 정권에서 물러났으나 군참모총장직과 종신상원의원등의 신분을 유지하며  군부 및 옹호자들의 보호를 받았다.

영화는 시종 두 개의 흐름이 교차되고 있다. 첫번째는 피노체트의 재판 과정. 스페인 검사가 피노체트가 재임기간에 스페인 시민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기소하고, 이 사건을 맡은 판사가 신병치료차 영국을 방문한 피노체트의 신병을 인도해 줄 것을 영국에 요구한다. 이에 영국 법원은  논란 끝에 피노체트를 스페인에 인도하기로 판결을 내리고도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그를 칠레로 보낸다. 하지만 결국 칠레 정부도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박탈하게 되어 그를 기소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의 흐름은 희생자 가족들과 고문 피해자들의 인터뷰. 영화는 희생자의 주검을 발굴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계속해서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노래로 심정을 내보이는 아버지. 죽은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어머니. 오랫동안 죽은 남편의 옷가지를 트렁크에 준비해 두었던 아내. 어머니가 성고문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딸. 머리가 가루가 되어버린 유골. 증언으로, 오열로, 노래로, 침묵으로. 그들은 증언한다. 피노체트가 17년간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피노체트를 기소한 스페인 검사는 기소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스페인 내전 당시 많은 사람들이 국외로 탈출하려 했을 때, 주스페인 칠레  영사가 배를 한 척 내주면서 "이 배에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하겠다"고 했다. 그가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다. 또한 이 구조는 당시 칠레의 보건장관이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림으로써 가능했는데, 그가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였다는 것. 그들은 모두 연대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것이며, 자신이 피노체트를 기소하려고 하는 건 바로 연대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파트리시오 구즈만은 <피노체트 재판>을 통해 <칠레전투 : 비무장 민중의 투쟁> 3부작에서 시작된 자신의 싸움이, 그리고 피노체트 독재에 대한 칠레 민중의 투쟁, 따라서 칠레전투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독재와 기득권의 권력에 비하면 미약해보이기만 하는 의지들의 연대가 어떤 힘을 보여주는 지도. 

***

다른 사족 하나. 현 정권이 4대법안을 제기한 취지에 모두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 진행 과정은 더 속터진다. 잘못 처리된 일은 제기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날림으로 번역된 고전은 두 번 다시 번역되지 않기 십상이고, 날림으로 맺은 협정은 지금까지도 일본 망언의 근거가 되고 있다. 

다른 사족 둘. 국제주의와 보편주의의 딜레마랄까.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일본이나 미국의 법정에 세워야 했다면 아무래도 개운치는 않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독재자를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 영화를 함께 본 친구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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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가 찬장에 진열된 와인들 중 1961년산 슈발 블랑을 가장 아낀다고 하자 마야가 놀란듯이 말한다. "그걸 진열만 해 두었단 말이에요? 당장 가져와요." "특별한 순간에 마시려구요." "그걸 마실 때가 특별한 순간이죠."

특별한 순간, 언젠가의 행복을 꿈꾸며 현재를 담보로 잡히는 것은 어리석다. 스테파니는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마야는 조용하지만 적극적이고 강단이 있다. 현재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

반면, 남자들은, 마일즈도 잭도 그걸 모른다. 이혼한 전 부인이 재혼했다는 소식에 부루퉁해져서 집에 돌아간다고 떼 쓰고, 술에 취해 전 부인에게 전화해 추태를 부리는 마일즈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다시 합칠 수도 있다는, 오지 않을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 잭은, 결혼이 코 앞인데 다른 여자들과 놀아난다. 결혼이라는 현실이 부담스럽고, 그저 편히 놀고 싶다. "넌 문학도 음악도 와인도 이해하는데, 왜 내 성욕은 이해를 못하는거야!"라니.

마야가 와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햇빛과 비와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포도, 발효와 숙성, 너무 오래돼 힘이 떨어지기 직전, 가장 농익었을 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며 맞이하는 마지막. 삶이란 그렇게, 주어진 것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선일게다.

유쾌한 영화다. 우스꽝스러운 철부지 두 남자는 제법 귀엽고, 두 여자는 매력적이고, 조용하고 경쾌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하고, 와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이 재미있다.

비평가협회의 상을 받았다고. 그럴 만 하다. 꽤 괜찮은 영화인데, 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와인에 취한 듯 몽롱하다. 와인이 아니라 잠에 취했지, 나는.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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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5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02-25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잠이 확 깰라하는데? ㅋㅋ

krinein 2005-02-25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일즈가 1961년산 슈발 블랑을 마시는 장면은 좀 짠했어요.

2005-02-25 0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02-2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네인님, 깨달음이 아니라 분풀이같은 느낌이었어요. 좀 짠하기도 하죠.

속삭이신님, 잘 잤습니다. ^^ 영화 재밌어요. 님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꼭 보시기를.

2005-02-25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옴니버스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있는 <원피스 프로젝트>는, <아드레날린 드라이브>와 <워터보이즈>로 유명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스즈키 타쿠지라는 학교 동문과 공동 작업한 홈 비디오 영화로, 줌, 팬, 편집, 사운드 작업을 일체 하지 않고 오로지 원 신 원 컷으로 만들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카메라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평소 지론을 증명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구상했으며, 동네 주변 공원과 아파트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배우들과 순식간에 작업했다.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찍은 14편의 단편들은 황당무계하고 포복절도할 유머를 담고 있지만 한편으론 일본 젊은이들의 불안과 열정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제작 당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와 베를린국제영화제를 발칵 뒤집어놓은 화제작이었다.

지난 주에 동생이 어떤 영화를 보러 가냐고 묻길래 <원피스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동생의 대답. "그런 영화 보지 마라.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들어. 영화란 게 제대로 돈 들여 만들어서 돈을 벌어야지. 그런 영화 만들어서 돈 벌면, 대작 만들었다 망한 사람들한테 그 돈 줘야해." 아, 철저한 소비자 마인드의 내 동생. 그 대답에 푸하하 웃는데, 동생은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왜 웃어?" "너 웃겨."

동생이 이 영화를 봤다면, 것도 돈 내고 봤다면, 정말 짜증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나 극장 안의 다른 사람들이나 한참 웃었는걸.



친구를 놀래키려고 방에 숨어 있다가 자신에 대한 험담을 모두 들어버린 여자애 대신, 험담한 애가 왈칵 울어버리는 <우정>, 윗층에서 떨어진 브래지어 때문에 여자친구에게 오해를 사고도 악상이 떠오른다며 "오, 라브라 브라 브라" 하고 괴성을 지르는 <오! 라 라!>, 교통사고를 당한 고교 부회장이 가방안에서 쏟아진 포르노 잡지를 숨기느라 사고 낸 사람들을 쫓아버리는 <Eros on the run>, 숲 속에서 담배를 피우다 동성애 커플의 진한 애정 행각을 목격하게 된 여고생들의 황당한 <사건>, 주인이 좋아하는 여자와 부딪혀 몸이 바뀌어 버린 고양이가 주인에게 프라이버시를 들먹이며 화장실 위치를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여자에게는 좀 더 적극적인 표현이 필요하다는 등의 친절한 충고까지 곁들이는 <고양이가 야옹하고 울다> 등 모든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황당하고 어이없고 웃긴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재미있는 작품. 70여분 간 신나게 웃었는데, 그쯤이면 돈을 들이지 않았어도 만족할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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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2-1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돈이 아니라 독창성과 아이디어지요. 큰돈 들여 내용 없는 영화 만든 사람들은 그 돈 도로 뱉어내야 합니다. 낭비했으니까^^

깍두기 2005-02-1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영화 어디서 하나요?

urblue 2005-02-13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낭비하면 안되지요.
옴니버스 영화제는 아트시네마에서 하고 있는데 오늘까지랍니다. 보시기는 어렵겠네요. 흠.

▶◀소굼 2005-02-13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방의 설움..징징;

urblue 2005-02-13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따우님!! 달거리대에 이어 원피스까지 만들어볼까요?

chika 2005-02-1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는 첫줄 읽을때까지만 해도 원피스...헉, 이 감독이 '원피스 애니를?'했다는거 아니겠습니까..ㅠ.ㅠ
좋겠군요. 이리 기발한 영화도 보시고~ ^^

urblue 2005-02-1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치카님은 조금 이해가 됩니다.

따우님, 제 친구가요, 꼬심에 넘어가서 달거리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참에 다른 것도 만들어보겠다고 손재봉틀을 샀답니다. 그런데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하루만에 반품했다네요. 재봉질도 쉬운게 아니라지요. 잘 하시려나.. =3=3

로드무비 2005-02-14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쉬운따나 워터보이즈를 먼저 빌려봐야겠군요.

urblue 2005-02-14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터보이즈도 무척 흥겹고 재미난 영화죠. ^^
 

옴니버스 영화제에서 상영중인 <커피와 담배>를 보다.

평일 8 상영이지만, 매진이 거라고 예상했었다. 자무쉬는, 적어도 그만큼의 지명도는 있으니까. 또다시 게으름을 피운 탓에 예매를 했고, 외근 나갔던 친구가 아트시네마에 들러 마지막 남아 있던 좌석 개를 잡았다. 비록 오른쪽 끝자리라 화면을 비스듬히 밖에 없었지만.

 


Strange to meet you


Twins


Renee


Somewhere in California


Delirium

 

작품 <Strange to meet you> 등장한 사람은 낯익은 로베르토 베니니와 모르는 스티븐 라이트다. 허름한 까페의 작은 테이블 위에 다섯 잔의 커피와 재떨이를 놓고 앉은 이들의 대화는 한마디로 썰렁하고 황당하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커피를 마시는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커피도 담배도 끊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식은 보이는 검은 액체는 마치 타르같다.

 

<Twins>의 웨이터 스티븐 부세미는 생긴 만큼이나 엉뚱하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쌍둥이 형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Somewhere in California>에서 이기 팝과 웨이츠는 담배를 끊은 사람의 장점은 정도 피울 있다는 거라며 슬그머니 말로보를 물고는 맛있게 빨아들인다. 어색하고 초점없는 대화.

 

<Cousins>에서는 유명한 배우로 케이트 블란쳇이 등장한다. 별볼일 없는 사촌 역할의 배우를 어디서 하여 누굴까 궁금해 했는데, 케이트 블란쳇이란다. 새침하고 내숭떠는 배우와 험하게 살은 듯한 사촌의 1 2역이 너무나 훌륭하다.

 

<Delirium>에서 주전자 채로 커피를 마시는 머레이와 랩그룹 우탱클랜 멤버들간의 대화는 귀엽다.

 

<Champagne>마지막이 것이, 정말 좋다. 커피 브레이크에 맛없는 커피를 마시면서 1920년대의 파리와 1970년대의 뉴욕을 얘기하는 할아버지들은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주, 죽음이라도 맞이하는 잠에 빠지는 모습이 알싸하게 다가와, 어느덧 커피를 마시고 싶어진다. 더불어 담배도.

 

커피와 담배가 놓인 조그만 체크무늬 탁자를 두고 앉은 다양한 사람들의 시시껄렁하고 무의미한 대화들은 한편 코믹하고 한편 정겹. 누군가와 마주 앉아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며 마시는 커피가 정말 맛있는 커피 아닐까.

 

영화가 끝난 당연히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친구와의 대화도 즐거웠다. 이런 사는 즐거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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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04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정말 부럽군요, 커피와 담배.

로드무비 2005-02-04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팝 몰골 다시 봐도 죽여주는군요.ㅎㅎ
아아, 다른 에피소드들도 보고싶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얘기 나눠본 게 어언 몇 해던가!
부럽기 한량없습니다.
거기다 영화표까지 예매해주는 친구라니!

urblue 2005-02-0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과 끝님, 부러우시죠? ㅎㅎ 그렇지만 님은 아니되어요.

로드무비님, 옴니버스 영화제가 일요일까지로 연장되었습니다. 전 내일 <원피스 프로젝트> 보러 갈거에요. <커피와 담배>도 매일 한 번씩은 있던데, 가기 힘드실라나?

바람구두 2005-02-0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네요. 난... 마감인지라...

urblue 2005-02-0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마감 끝내셔야 할 텐데요.
일 잘 되시라고 제가 빌어드리죠. 힘!!
 

조승우의 영화는 편도 보지 않았다. 친구들이 호들갑스럽게, 오로지 조승우 때문에 <후아유> <클래식> 번씩 보았다고 말할 때에도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배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뮤지컬 <지킬 하이드> 보고 나서 나도 조승우의 팬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 <말아톤> 촬영 중이라는 소식이 들릴 때부터 친구들과 개봉하자마자 봐야 영화 1순위로 꼽으며 기다린 당연지사다.

 

일찌감치 예매를 놓고 있다가 영화를 때가 가까이 되어서야, 내가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보면, 감동하기보다는 닭살이 돋고, 같은 얘기냐,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인간이 못돼먹어서겠지만, 헐리우드의 문법이 지겨워서다, 라고 나름 항변한다. 그런데, 5 지능을 가진 자폐아의 마라톤 도전기라니, 이거야말로 진짜 휴먼 드라마아닌가. 갑자기 밀려드는 불안감. 그래도 , 조승우를 보기 위한 거다, 라고 위안한다. 사실 그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생각 따위 전혀 했을 테니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변한다. 엄마는 아이의 얼굴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던 엄마는 아이의 기분을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겠다고 소리치고, 엄마에게 버림받을까 듣던 착한 아이는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 달리기를 선택하고, 술로 나태로 그냥저냥 살아가던 코치는 뛰기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예전의 달리는 기쁨을 되찾고, 형에게만 집착하는 엄마에게 질려있던 동생은 어느 순간 엄마도 형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 변하는게 그렇게 쉬운가. 영화가 내가 말한 것들을 그저 직선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안타깝고 아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런 것들이 거슬린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니까.

 

마지막쯤 삽입된 생뚱맞은 장면들. 자폐아는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계속 설명하다가 어째서 사람들과 교감(?)하는 상상인지 환상인지 하는 장면들을 집어넣은 건지 이해가 된다. 어울려 사는 세상이라고? 자폐아도 정상인들과 다를 없다고? 그래, 역시 사람이고, 감정이 있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하는 것도 하는 것도 있다. 초원이가 자신을 느끼고 알게 되는 지점에서, 관객들이 그걸 공감하게 되는 지점에서 그치면 안되나? 반드시 세상과 정상인들과 화해시켜야 하나? 그쯤 되면 영화를 만든 사람의 강박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조승우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자폐아 초원이의 맑은 기운과 발설하지 않는 미묘한 감정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곳에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리는 눈동자와 맹한 듯한 표정과 끊임없이 까딱대는 손가락마저 사랑스럽다. 마지막의 환히 웃는 얼굴, 얼굴을 것만으로 영화의 모든 단점을 용서할 있다. 같은 다시 하기 싫다는 어린 배우를 앞으로도 좋아하게 같다.

 

가지 , 춘천마라톤 코스 예쁘더라. 가을에는 경춘국도를 따라 춘천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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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5-01-2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배우 가슴팍에 '조선일보'... 왜 이런 것만 눈에 보이는 지... ㅜㅜ

urblue 2005-01-2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 저도 그게 영 맘에 안 들어서 사진 바꿨습니다. ㅎㅎ
영화 보면서도 내내 거슬렸다니까요, 조선일보.

로드무비 2005-01-2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가족도 내일 보러갑니다.
블루님, 책 다음주 주고받을까요?^^

하얀마녀 2005-01-30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조선일보는 날이 갈수록 점점 싫어지는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