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의 영화는 단 한 편도 보지 않았다. 친구들이 호들갑스럽게, 오로지 조승우 때문에 <후아유>와 <클래식>을 몇 번씩 보았다고 말할 때에도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배우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고 나서 나도 조승우의 팬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 <말아톤>을 촬영 중이라는 소식이 들릴 때부터 친구들과 개봉하자마자 봐야 할 영화 1순위로 꼽으며 기다린 건 당연지사다.
일찌감치 예매를 해 놓고 있다가 영화를 볼 때가 가까이 되어서야, 내가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보면, 감동하기보다는 닭살이 돋고, 또 같은 얘기냐,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인간이 못돼먹어서겠지만, 헐리우드의 문법이 지겨워서다, 라고 나름 항변한다. 그런데, 5살 지능을 가진 자폐아의 마라톤 도전기라니, 이거야말로 진짜 ‘휴먼 드라마’ 아닌가. 갑자기 밀려드는 불안감. 그래도 뭐, 조승우를 보기 위한 거다, 라고 위안한다. 사실 그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볼 생각 따위 전혀 안 했을 테니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변한다. 엄마는 아이의 얼굴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던 엄마는 아이의 기분을 알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겠다고 소리치고, 엄마에게 버림받을까 말 잘 듣던 착한 아이는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 달리기를 선택하고, 술로 나태로 그냥저냥 살아가던 코치는 뛰기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예전의 달리는 기쁨을 되찾고, 형에게만 집착하는 엄마에게 질려있던 동생은 어느 순간 엄마도 형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 변하는게 그렇게 쉬운가. 영화가 내가 말한 것들을 그저 직선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안타깝고 아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런 것들이 거슬린다. 사람은 쉬 변하지 않는다니까.
마지막쯤 삽입된 생뚱맞은 장면들. 자폐아는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계속 설명하다가 어째서 사람들과 교감(?)하는 상상인지 환상인지 하는 장면들을 집어넣은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어울려 사는 세상이라고? 자폐아도 정상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그래, 역시 사람이고, 감정이 있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잘 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있다. 초원이가 자신을 느끼고 알게 되는 지점에서, 관객들이 그걸 공감하게 되는 지점에서 그치면 안되나? 반드시 세상과 정상인들과 화해시켜야 하나? 그쯤 되면 영화를 만든 사람의 강박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조승우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자폐아 초원이의 맑은 기운과 발설하지 않는 미묘한 감정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한 곳에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리는 눈동자와 좀 맹한 듯한 표정과 끊임없이 까딱대는 손가락마저 사랑스럽다. 마지막의 환히 웃는 얼굴, 그 얼굴을 본 것만으로 영화의 모든 단점을 용서할 수 있다. 같은 걸 다시 하기 싫다는 이 어린 배우를 앞으로도 쭉 좋아하게 될 것 같다.
한 가지 더, 춘천마라톤 코스 참 예쁘더라. 올 가을에는 경춘국도를 따라 춘천에 꼭 다녀와야겠다.